[책마을] 시한부 남편과 함께 쓴 그녀의 성장史

입력 2018-06-28 17:23  

어쩌면 끝이 정해진 이야기라 해도


[ 유재혁 기자 ] 운동신경질환에 걸린 남편 사이먼은 온몸의 근육이 굳어지며 휠체어 신세를 졌다. 우리는 희망을 잃고 푹 절어 있었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용감하게 껴안는 모습을 어린 자식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너무 안전하게 사는 데만 몰두하면 결국 늪에 빠질 것이다. 맨 처음 슈퍼히어로의 비밀을 알려준 좋은 친구들을 찾아가자. 우중충한 날씨가 많은 아일랜드를 떠나 화창하게 빛나는 호주로 가자. 나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과 세 아들의 기저귀 갈기, 얼굴 닦아주기, 우유 타기, 화장실 데리고 다니기 등을 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모험심을 연료 삼아 두 영혼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어쩌면 끝이 정해진 이야기라 해도》는 절망 속에서 초인적인 의지로 살아가는 한 여성의 눈물겨운 분투기로 커다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촉망받던 영화감독 남편이 죽음에 이르는 난치병을 선고받은 뒤 두 명을 더 낳아 모두 다섯 아이를 키우게 된 저자가 슈퍼히어로처럼 고통과 역경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독자들에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감흥을 던져준다.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게 된 사이먼은 꿈을 접지 않고, 시선구동 컴퓨터로 소통해 영화를 제작해낸다. 예정된 결말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고통을 극복하고 성장해가는 부부의 모습을 빼곡히 기록해 전달한다. 저자는 아일랜드의 한 신문에 자기 삶에 관한 칼럼을 연재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독자들이 꺼내볼 만한 희망 지침서다. (루스 피츠모리스 지음, 변용란 옮김, 한국경제신문 한경BP, 288쪽, 1만5000원)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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