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만 외쳐대고 규제혁파는 절대반대
김형호 정치부 차장
[ 김형호 기자 ]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지난 5월24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었다가 하마터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이날 의총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야가 전날 11시간의 마라톤회의 끝에 가까스로 합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 당론 추진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민주당 환노위 간사인 한정애 의원이 단상에 올랐다. “노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요술방망이가 우리에게는 없다”며 중재안을 선택한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당론 추인을 당부했다. 하지만 의총은 예상과 달리 전개됐다. “숙식비는 빼고 상여금만 넣으면 안 되겠느냐” “열악한 이주 여성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느냐” 등 의견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졌다. 자칫하면 ‘배가 산으로 가겠다’고 판단한 원내지도부는 당론 추진을 접고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합의가 있었다’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수습했다. 원대대표단의 한 의원은 “야당보다 우리 당 의원들 설득이 더 어려운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은 여전히 야당스럽고 한국당은 여당 물이 덜 빠졌다”는 우스개 얘기가 나돈다. 정권이 바뀐 지 1년이 넘었지만 상당수 민주당 의원이 아직도 ‘야당 모드’에 젖어 있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이 연일 규제 혁파를 외치고 있지만 민주당에는 야당 때와 마찬가지로 규제 혁파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의원이 적지 않다.
신성장산업 분야에는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관련 법안들이 속도를 못 내는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 규제 샌드박스는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서 처음 거론된 뒤 지난 3월 관련 5개 법안이 발의됐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의 반응이 뜨악한 수준이다. 법안 발의 직후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당시 원내대표는 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원론적 수준의 언급을 했을 뿐이다.
정부가 최근 인터넷전문은행의 규제를 완화하는 은산분리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한 초선 의원은 “관료들의 주장에 놀아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활성화 법안을 두고는 “개인정보 오남용이 우려된다”는 게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당 일부 의원의 반대 논리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부작용·무용론·역효과를 앞세운 반대 논리가 야당 때와 판박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야당 의원 때는 자신의 신념과 지지층만 보고 가면 되지만 여당이면 욕을 먹더라도 일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문재인 정부는 6·13 지방선거부터 2020년 4월 총선까지 약 2년을 정부 2기로 규정하고 민생·경제정책 ‘올인’ 전략을 펼 계획이다. 집권 1년차인 1기에는 적폐청산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면 2기부터는 민생경제에 드라이브를 건다는 구상을 집권 초기부터 짜 뒀다. 2020년 총선은 문재인 정부 2기의 경제 성적표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얼마 전 타계한 김종필 전 총재는 유언집 《남아 있는 그대들에게》를 통해 정치 후배들에게 맹자의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을 화두로 던졌다. 정치의 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여당인지 야당인지 헷갈려 하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아직 야당 체질이십니까.’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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