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번영의 원천은 민주주의 아닌 사유재산권

입력 2018-07-04 17:37  

한스 헤르만 호페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


한스 헤르만 호페 미국 네바다주립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현대 정치철학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을 주창하는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체제”(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라는 대다수 학자의 주장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2001년 저술한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神)인가》를 통해서다.

호페 교수는 “민주주의는 결코 최선의 정치체제가 아니며, 전체주의나 공산주의만큼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多數決)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다수의 폭력’으로 이어져 사회 발전 동력인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주의 폐해를 제대로 지적했다는 점에서 그의 저서는 많은 정치학도에게 필독서가 되고 있다.

'익명성'에 숨은 대중의 이기심

‘오스트리아학파’의 맥을 잇는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호페 교수는 ‘대중’이라는 익명성에 숨은 개인의 ‘주권의식 부재’가 민주주의의 가장 큰 한계라고 봤다. 개인이 ‘익명성의 그늘’에 들어가면 합리성과 책임감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개인은 국민 또는 대중이라는 포괄적인 집단에 숨어 있을 때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전에는 부도덕한 것으로 여겼던 ‘가진 자’에 대한 수탈도 ‘공공복리’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 국가는 계몽군주가 통치했던 근대 네덜란드와 스웨덴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 이들 국가는 적극적으로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산업을 육성했다.”

그는 포퓰리즘을 민주주의의 태생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통치자들은 여론의 향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수의 ‘갖지 못한 자’를 위해 소수의 ‘가진 자’를 희생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포퓰리즘 정책과 과잉 복지가 기승을 부린다. ‘공짜 이득’을 얻으려는 집단도 득실댄다.”

호페 교수는 ‘민주주의 입법 과잉’도 경계했다. “민주정(民主政)은 어떤 정부 형태보다도 더 많은 법률을 찍어낸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서 도와줘야 할 집단과 계층이 너무 많다.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지원법을 만들고, 특정 계층을 위한 세금 감면법도 입법화한다. 다수의 지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소수의 가진 자’를 억압하는 법률을 쏟아내기도 한다.”

호페 교수는 “민주주의가 사회 발전을 이끌 것이라는 맹신(盲信)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등’과 ‘다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사적 자치와 자유주의 등 자유시장경제 원리와 충돌해서다. 이념과 제도에 대한 기대보다 자유주의를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개인이 많을 때 사회가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미국 건국의 가치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조지 워싱턴, 제임스 매디슨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다수에 휘둘리는 민주주의가 개인 재산권과 자유를 해치는 ‘다수의 폭정’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최대한 실현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공존시킬까’였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매디슨 4대 미국 대통령은 입법, 사법, 행정의 권력 분산을 통해 ‘다수의 폭정’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을 헌법에 철저히 반영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는 민주주의의 ‘임기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봤다. “임기가 정해진 정치인들에게 다음 세대까지 고려하는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당장 닥쳐온 선거다. 단기 정책에 집중하기 쉬운 민주주의 국가가 ‘오너십’이 확실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영하는 군주제 국가보다 우월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는 “인류가 지속 가능한 발전과 평화를 이루려면 정부 형태보다 기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정치체제가 사유재산권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입법과잉'은 민주주의 태생적 문제

“사적 재산권을 요구하는 인간 본성을 억압하면 사회 발전은 공염불이 된다. ‘평등’과 ‘공공의 이익’을 앞세우면 언뜻 고귀해 보인다. 하지만 시민의 도덕적 해이에 기반을 둔 ‘약탈적 행위’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국가의 부(富)를 창출하는 집단을 핍박하고 ‘성장 없는 분배’를 강행하면 경제 침체는 불가피해진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그의 견해도 주목할 만하다. “진보는 소수 엘리트들이 미래를 설계하고 자기 뜻대로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시각이다. ‘진보’의 이름으로 급진적인 정책이 쏟아지는 이유다. 반면 보수는 세상이 설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본다. 전통과 사회적 유산을 중시하고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은 어느 한 순간, 한 개인에 의해 창조될 수 없다. 사회적 유산도 오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가운데 개인의 성취가 쌓여 축적된다. 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이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게 진정한 보수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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