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에 제소하는 등 법률적 대응 강구하고
기업도 이해관계자로서 우리 입장 설득해야
신희택 < 무역위원회 위원장 htshin@snu.ac.kr >
미·중 통상마찰이 확산될 조짐이다. 미국이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자 중국도 상응하는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이에 미국은 중국이 관세로 보복하면 다시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도 철강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부과에 보복관세로 맞서기로 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 법원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일부 제품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하는 예비결정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미·중 통상마찰 파장이 중국에 투자한 개별 기업의 영업활동 규제로까지 번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통상 압박은 최근 자동차 분야에까지 이어지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주요 자동차 수출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자동차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미국 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부품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수입자동차 안보 영향 조사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며, 한국은 제외돼야 한다는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제출하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렇듯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세계 무역과 경제성장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지난 3일 서울에서 미국, EU, 중국, 일본을 포함한 세계 20개국 무역구제기관 대표가 참석한 ‘무역구제 서울국제포럼’이 무역위원회 주관으로 열렸다. 2001년부터 열린 이 포럼은 반(反)덤핑 관세 조사를 담당하는 각국의 무역구제기관 대표가 참석하는 유일한 국제 모임으로, 그동안 공정한 무역질서 확립과 자유무역 확산에 기여해왔다.
포럼에 참석한 무역구제기관 대표들은 통상 마찰이 확산되는 최근 추세를 우려하면서 “무역구제제도가 보호무역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다자간 무역체제인 WTO 협정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용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호무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알란 디어도프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특정 분야의 노동자 또는 지역이 소외되는 불평등 문제가 정책결정자의 관심 사항이라면, 무역을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통상정책보다는 사회복지정책과 같이 해당 계층에 직접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개별 국가의 불평등 문제는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변화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경제·산업정책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보호무역주의는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사안인 만큼 WTO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참석자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수출로 성장한 우리나라는 작금의 국제통상 상황을 엄중한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범(汎)국가적 차원에서 보호무역주의 극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는 미국 행정부뿐만 아니라 의회, 업계, 소비자단체 등에 우리의 뜻과 우려를 전달하는 이른바 ‘아웃리치’ 활동을 전방위적으로 치밀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또 미국 내 소송과 WTO 제소 등 법률적 대응 방안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최근 현대제철이 미 국제무역법원(CIT)에 제소해 47.8%에 이르던 냉연도금강판의 반덤핑 관세율을 7.89%로 조정받은 것이 좋은 사례다.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노력 이외에도 WTO, 주요 20개국(G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다자기구를 통한 국제공조 노력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중견국가로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조정자로서의 역할 등 국제통상의 다자체제를 유지·강화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관련 산업협회 및 개별 기업 입장에서도 국내외 통상전문가 도움을 받아 미국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이해관계자로 참여해 미국법 체계에 따른 법률적인 대응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 다변화와 함께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날로 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민관(民官) 공동의 노력과 대응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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