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외환보유액

입력 2018-07-0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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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외환보유액 하면 얼핏 외국 돈, 특히 미국 달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는 이와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예치금이라는 이름으로 현찰을 해외 금융기관에 맡겨 두고 있지만 이는 전체 보유 외환의 5.6%에 불과하다. 대부분(91.9%)의 외환은 유가증권 형태로 갖고 있다. 유가증권 중 약 60%는 미국 등의 국채나 정부기관채이며 회사채와 자산유동화증권 등에도 일부 투자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에는 금도 포함되지만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한국인들에게 ‘외환’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보다도 1997년 외환위기일 것이다. 그해 12월 외환보유액은 39억달러로 대외 부채를 갚을 수 없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말 외환보유액은 4003억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4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외환위기 때에 비해 100배 이상 많아진 것이다. IMF가 권고하는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3814억~5721억달러) 수준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외환이 적정 규모인지에 대한 보편적 기준은 없다. 단기외채와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3분의 1, 석 달치 수입액을 합친 금액을 적정 수준으로 보는 ‘기도티 룰(Guidotti Rule)’도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국제결제 수단으로 널리 통용되는 달러나 엔, 유로를 쓰는 나라와 한국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환율급변동을 경험해야 했다.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과거 국내 금리가 미국에 비해 월등히 높던 시절엔 외환매입을 위해 발행한 통화안정증권 금리가 미 국채금리보다 높아 외환보유 비용이 적잖게 들기도 했다. 물론 미국보다 국내 금리가 낮아진 요즘엔 이런 사정이 반대가 됐다.

유동성 역시 외환보유 규모 못지않게 중요하다. 급할 때 현금화할 수 없다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이 3조달러를 넘어 세계 1위인 중국이지만 이 중 3분의 1가량은 유동성이 거의 없는 자산이라는 주장도 있다.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기라도 하면 중국도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노력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작용했을 수 있다.

‘외환 콤플렉스’가 있는 데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으로서는 현재 수준의 외환보유액에 만족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6월 말 기준 세계 9위라지만 2위 일본(1조2545억달러)의 3분의 1도 안 된다. 중국이 현재 우리 수준인 4000억달러를 돌파한 게 2003년이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외환’에 관한 한 우린 아직 배가 고프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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