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성장하면 복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진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아동수당, 청년수당, 노령연금, 실업급여 확대와 같이 현금성 복지지출을 이런 국민적 요구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복지 혜택을 받는 이들은 당장 기쁘겠지만, 정부의 복지 확대는 재정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복지는 한 번 늘어나면 다시 줄이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 재정자립도’는 이런 복지 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을 만큼 높지 않다. 예산은 언제나 한정돼 있기 때문에 예산 분야 비중은 결국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복지 예산을 늘리면 사회간접자본, 연구개발, 교육 등에 쓰여야 할 예산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는 국가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약화시키고 결국,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준다.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고 차베스가 집권한 뒤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현금성 복지를 무차별적으로 늘려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미국의 셰일혁명 이후 유가가 하락하고 설비 투자를 제대로 안 해 석유 채굴량도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번 늘어난 복지 지출을 줄일 수는 없었다. 정부 곳간이 점점 줄어들자 결국 통화량을 늘리는 것으로 대처했다. 지금 남은 것은 화폐가 넘쳐나는 초인플레이션이다.
재정과 세금은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을 잘 활용해 국민 후생을 증진하라는 의미로 국민이 정부에 위임한 것이다. 주인인 국민이 낸 세금을 정부나 지자체가 대리해 효율적으로 잘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급증하는 복지 지출을 지켜보면 대리인인 정부나 지자체가 세금을 낭비하는 ‘도덕적 해이’와 ‘주인-대리인 문제’가 우려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페이고’나 파산한 자치단체에 책임을 묻는 원칙을 세워 감시가 필요하다.
경제학에서 도덕적 해이란 어떤 계약(거래)이 이뤄진 이후, 정보를 가진 측이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감추어진 행동의 상황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미국 생명보험회사들은 보험가입 후 12개월 또는 24개월 안에 자살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보험가입자의 자살률은 가입 후 13개월과 25개월이 되는 시점에서 절정에 달했다. 도덕적 해이는 이처럼 법 또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거나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는 행동을 포괄하는 용어로 확대됐다.
도덕적 해이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경제 주체들 사이에 정보 수준의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많이 나타난다.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유인체계(성과급, 감봉 등), 손실 공동부담, 감시 등이 필요하다. 세금 역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영역이다. 정확한 감시와 유인체계가 세금을 걷고 사용하는 정부와 지자체에도 필요하다. 도덕적 해이와 주인-대리인 문제를 예방하는 것을 공공 정책의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 이유다.
■ 페이고 [Pay as you go]
Pay as you go란 문장은 "현금으로 지불하다", "지출을 수입 안에 억제하다"라는 뜻이다. 페이고 원칙은 정부가 경기부양 등의 목표를 위해 지출계획을 짤 때 재원 확보방안까지 마련하도록 한 원칙이다. 선진국에서 포퓰리즘 정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재정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이를 활용하고 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jyd54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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