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학년생들의 성적표에는 A~F 등 학점이 표시되지 않는다.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해 ‘통과 또는 낙제(Pass or Fail)’로만 분류된다. 서울대 로스쿨이 1학년 성적 분류방식을 대폭 수정하면서 다른 로스쿨은 물론 로펌 등 법조계에 상당한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대 로스쿨 관계자는 9일 “내년부터 1학년생들의 중간·기말고사 평가방식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석차에 따라 차례로 A~F 학점을 매기지 않고 성적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모두 통과(Pass)로 분류하는 내용이다. 이 관계자는 “1학년생들에게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뜻은 정해졌다”며 “다만 1학기만 바꿀지, 과목별로 적용할지 등에 대해서는 내부 의견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로스쿨이 1학년생의 성적 등급을 2단계로 단순화하려는 이유는 1학년 학점이 학생들의 진로와 취업에 미치는 영향이 과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첫학기나 1학년 학점이 좋지 않으면 대형 로펌의 채용전환형 인턴으로 선발되기가 어려워질뿐더러 법원과 검찰 채용 등에서 서류전형 통과 가능성도 낮아진다. 내부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이과 출신이나 선행학습을 안하고 들어온 학생들의 부적응 문제가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로스쿨 교수는 “인공지능(AI) 전문 법률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들어온 한 공과대 학생이 2, 3개월만에 본 중간고사에서 대부분 C학점을 받자 충격을 받고 휴학한 경우도 있었다”며 “1학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휴학하는 학생들이 체감상 15%에 달하는데 대부분 성적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줄 세우기’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학생들에게 적응 기간을 주겠다는 게 서울대 로스쿨이 성적 등급을 개선하겠다고 나선 취지다. 서울대 로스쿨은 “학생들이 학점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잠재력을 발휘할 시간을 줘야 한다”며 “우수한 학생들이 법률인으로서 다양한 경로를 생각하지 않고 1학년을 마치자마자 대형 로펌에 ‘얼리컨펌(인턴 후 조기채용)’되는 현상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도 1학년 1학기 평가는 통과 또는 낙제 방식으로만 이뤄진다.
서울대 로스쿨의 움직임을 두고 로스쿨계와 법조계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선 변호사시험(변시)과 내신 준비를 병행하면서 가중된 부담을 해소할 수 있어 환영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로스쿨 학점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실무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채용 시 중요한 평가 자료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학점 외에 기타 자격증과 외국어 등 다른 ‘스펙’의 비중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혁이 미칠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법전협) 관계자는 “변시 합격률이 점차 떨어지면서 로스쿨들이 내신평가를 엄격하게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서울대 로스쿨의 변화가 명문 로스쿨을 중심으로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대 로스쿨은 교수회의와 대한변호사협회, 법전협 등과의 협의를 거쳐 10월 중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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