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변화 분수령
집권 2년차 경제실적 부진에 규제완화로 선회
지지기반인 진보진영 "개혁 후퇴" 강력 반발
혁신성장 정책 빠른 속도로 구체화될지 주목
[ 고경봉/손성태/김일규 기자 ]
흔들림 없는 소득주도 성장을 줄곧 외치던 정부의 정책 기조에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정부의 이른바 실세 장관들의 목소리 톤부터 달라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이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실패를 부를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나타낸 데 이어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노동계가 반대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적극 주장하더니 최근엔 “최저임금 인상폭을 신축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 압승으로 정책 기조가 더 강해질 것이란 예상과는 다른 행보다. 집권 2년차로 접어들어 오히려 고용지표와 소득분배 지표가 크게 나빠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화법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용쇼크’와 최하위층 소득 감소 등 부진한 경제실적에 “반성해야 한다” “뼈아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혁신성장과 규제혁파에 속도를 낼 것을 강하게 주문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소득주도 성장론자로 꼽히던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을 교체하고 그 자리에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윤종원 주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를 앉혔다.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진보진영에서조차 “개혁이 후퇴하고 있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노무현 정부 때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기용했다가 혁신성장과 경제자유화에 무게를 두면서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교체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기업 챙기기 나선 대통령
문 대통령이 9일 인도 국빈 방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난 것은 상징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만남은 예정에 없던 일로 경호실과 의전실도 예상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고, 이 부회장은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머리에는 경제에 관한 한 일자리 문제의식이 가득하다”며 “결국 좋은 일자리는 민간 기업이 풀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부회장을 만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반응도 긍정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해외에서 기업인을 별도로 만난 것은 대내외적으로 기업을 챙기겠다는 명백한 신호를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달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점검회의에서 은산분리 완화와 개인정보 활용 확대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던 사실도 경영계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규제 대상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부분이어서 현 정부가 언급조차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앞으로 얼마나 진전될지 모르지만 논의 테이블에 올려놨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변화”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참여연대와 여당 내 반대 목소리가 클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논의에 착수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 지도부가 상당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성장 지속 여부 지켜봐야
경영계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노동계의 극심한 반발을 무릅쓰고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을 통과시킨 점과 근로시간단축 위반에 대해 6개월의 처벌 유예기간을 둔 점 등도 기업 부담을 줄여주려는 현실론을 인식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의 투자 발목을 붙잡아온 규제는 기획재정부와 총리실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풀되 기업 지배구조나 대기업 갑질, 산업재해 등에 대한 규제는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이 나서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하지만 정부가 경제정책의 방향 전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진단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이 소득주도 성장에 깊은 확신이 없던 차에 고용대란과 저소득층 소득 감소 등의 상황이 발생하자 흔들리고 있다”며 “하지만 혁신성장 정책을 얼마나 힘있게 밀고나갈지는 향후 개각 내용 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봉/손성태/김일규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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