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내각·국회와 함께 가는 국정운영을…

입력 2018-07-10 18:20  

장관들은 안 보이고
청와대 목소리뿐인 국정 운영
일자리도 脫원전도
부작용만 '산더미'

국무회의 중시하고 여야와 함께해
'소용돌이의 정치'서 벗어나야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iykim@hallym.ac.kr >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30명이 모인 토론회에서 “대통령 심기만 생각하는 ‘예스맨’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에 출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생겨난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 강화에 주목해야 한다. 비서실의 규모와 역할이 당초 예상보다 커지고 또 과거 정부와 다름없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다. 일자리 대책 및 최저임금 결정을 포함한 경제 전반, 남북 대화 등 대북 정책, 탈원전 에너지 정책, 집값 문제 등 국정운영을 청와대가 주도하고 정부는 뒤쫓아가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청와대만 보이고 내각이 보이지 않는다.

헌법에 따르면 국정은 내각에 근거해야 한다. 헌법 제87조②는 ‘국무위원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국정을 심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89조는 국무회의 심의 사항으로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을 제일 앞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국정의 기본계획’이 대통령 주재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논의·결정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청와대와 비서실이 주도하는 국정운영은 이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과 추진 방식 및 비용 측면에서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손실이 1385억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따른 손실 추정이 1조원에 달하고 있으며 산을 깎아 조성한 태양광 발전소들이 장마에 무너져 내리는 등 ‘친환경 에너지’가 만들어 내는 자연환경 파괴와 4대강의 수백 개 ‘보(洑)’가 가져온 환경 훼손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또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으로 쏟아지는 청원의 대부분은 ‘낙태죄 폐지’ 등 “법으로 막아 달라”는 것이다. 이는 청와대 권한을 넘어서는 입법에 관한 사항이다. 청와대가 아니라 국회로 청원이 들어가야 할 사안들인데 국민은 청와대에 해결을 요구하고 있고, 청와대는 그런 입법청원을 용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은 조선시대 ‘신문고’의 재현이라는 긍정적 측면보다 청와대가 입법부가 해야 할 일까지 주도하게 하는 등 청와대의 권력 확대라는 부정적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대통령비서실은 헌법기관이 아니다. 단지 ‘정부조직법’ 제14조①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비서실을 둔다’에 근거한 행정조직일 뿐이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에 대한 ‘직무보좌’가 ‘국정운영’쯤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생겨나고 있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소득주도성장 추진 및 국민연금공단 인선 개입 파문, 조국 민정수석의 헌법개정안 발표와 검·경 역할 분담안 준비 등이 특히 그렇다. 물론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비서실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대통령의 권력 강화와 비서실로의 권력 집중이 나타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대신 내각이라는 정부의 공식 조직이 무시되고 집권당이 축소되고 국회의 역할은 무의미해진다.

대통령 권력은 한국 정치에서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난제다. 대통령 권력이 조금만 커지면 권위주의 정치라는 비판이 나타났다. 정치학자 그레고리 핸더슨은 조선시대 이후 중앙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소용돌이의 정치(the politics of vortex)’라고 비판했다. 대통령과 대중을 매개하는 중간집단이 없고 권력이 분산되지 않아서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을 막고 비서실이 주도하는 국정운영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이해찬 씨를 총리로 임명하고 대통령 권한을 위임해 실세총리를 만들었다. 총리 비서실을 200명까지 늘려 정책 기능을 강화하고 책임총리제를 운영했다. 청와대와 비서실에 권력이 집중되면 권력 내부의 비판이 사라지고 외부 견제도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개인과 비서실에 집중된 권력의 폐해를 잘 보았기에 내각을 통한 국정을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한다고 공약했다. 이제부터라도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보다 국무회의에 더 방점을 둬야 한다. 수석보좌관 보고보다 장관을 더 많이 만나야 하고 민주당 의원들을 포함한 야당 의원과도 더 자주 국정을 논의해야 한다. 문 대통령에게 내각 중심 국정운영과 여야와 함께하는 민주정치의 제도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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