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강력범죄에 무방비
망상·환청 등 정신장애로
예측할 수 없는 범죄 일으켜
퇴원해도 당국은 '나몰라라'
현행법상 환자가 원치 않으면
행정기관에 안 알려도 돼
'정신건강법' 개정후 입원 줄어
강제 입원 요건 어려워져
입원환자 2년만에 3.8% 감소
잠재적 범죄자 간주는 금물
작년 강력범죄 2만7000명 중
정신질환자는 2.7%에 그쳐
[ 임락근/이현진 기자 ]
지난 8일 경북 영양의 한 주택가에서 조현병을 앓는 백모씨(42)가 흉기를 휘둘러 김선현 경감이 숨지고 동료 경찰관 한 명이 크게 다쳤다. 백씨는 5월31일 청송의 한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제때 약을 챙겨 먹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병은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상담을 통해 관리받아야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질환이다. 그러나 백씨의 거주지역을 관할하는 영양군 보건소와 영양경찰서는 그가 퇴원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현행법상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의료기관이 입·퇴원 기록 등 개인정보를 행정기관에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1년 환경미화원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죄로 실형까지 살았던 백씨는 출소 이후 열 번가량 입·퇴원을 반복하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다 결국 두 번째 살인을 저질렀다.
환자 퇴원해도 보건소·경찰은 ‘깜깜’
최근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력범죄 사건이 잇따르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이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제때 약을 먹었는지, 생활 습관은 어떤지 등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허술한 환자 관리 시스템이 이 같은 비극을 낳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강원 강릉의 한 정신병원 의사에게 망치를 휘두른 40대 조현병 환자도 살인 전과가 있지만 당국의 보호 관찰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8일에는 살인 전과가 있는 40대 조현병 환자가 병원 폐쇄 병동에서 치료를 받던 중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0일 서울 성북동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폭행해 살해한 30대 조현병 환자는 병원 입원 문제로 어머니와 다퉜던 것으로 드러났다.
흔히 정신분열증이라고도 불리는 조현병은 망상, 환청, 정서적 둔감 등의 증상과 더불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다. 전문가들은 굳이 입원하지 않더라도 약을 꾸준히 먹고 통원 치료를 받으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들의 입·퇴원과 사후 관리 및 지속적인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퇴원 후 환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거주 지역의 보건소에 환자 정보가 전달된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보건당국이 임의로 환자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비록 전과가 있는 정신질환자라고 해도 입·퇴원 시 경찰에 관련 내용이 통보되지 않는다.
최준호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환자가 퇴원해도 정신병 이력을 밝히기를 꺼릴 때가 많아 행정기관에 개인정보를 통보하는 게 쉽지 않다”며 “이 때문에 관할 보건소에서 조현병 환자의 거주 현황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퇴원 기준도 증상 호전보다 타인에 대한 위해 가능성에 방점이 맞춰져 있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환자가 퇴원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도 부족한 형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조현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2만70명이었다. 전문가들은 실제 조현병 환자 수는 이보다 3~4배가량 많을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정신재활시설은 2016년 기준 336개로 시·군·구별로 평균 한 곳에 불과하다. 백씨 사건이 벌어진 경북지역은 시설 15곳에서 3132명의 정신질환자를 돌보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이 입주해 치료 및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거주서비스 시설 정원은 인구 10만 명당 4.7명으로 △오스트리아 54.9명 △이탈리아 33.4명 △일본 15.3명 △미국 15.2명 △호주 10.0명 등에 비해 크게 열악한 실정이다.
강제 입원 요건 강화로 제때 치료 못해
지난해 5월 정신건강복지법이 환자의 인권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개정되면서 오히려 관리 시스템만 더욱 허술해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존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 명의 진단만 있으면 강제 입원이 가능했지만 개정된 법률에 따르면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 등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을 때만 강제 입원이 허용된다. 이를 놓고 의료계에서는 “정신과 전문의 수가 부족한 의료계 현실을 고려할 때 강제 입원을 위한 요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비(非)자의입원(보호·행정입원) 비율은 37.1%로, 2016년 12월(61.6%)에 비해 24.5%포인트 감소했다. 전체 입원 환자 수도 6만6523명으로 2016년 말 대비 3.8% 줄었다. 대한조현병학회는 12일 낸 성명에서 “진료실과 지역사회 현장에서는 입원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환자조차 요건 부족으로 입원하지 못해 적절한 시기에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는 역기능이 나타나고 있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현장에 출동해 정신질환자를 상대해야 하는 경찰관들도 고충이 많다. 경찰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진료 및 입원을 거부하는 병원이 많고 정신질환센터는 주간에만 운영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정신질환 추정자를 발견해도 신속하게 적절한 대응을 취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 규정을 완화하는 방향이 논의됐지만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적극적 환자 관리가 오히려 인권보호”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인 것은 맞지만 모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찰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2만7071명 중 정신질환자는 2.7%(731명)에 그쳤다. 인권 침해를 우려한 소극적인 환자 관리보다 적극적인 환자 관리가 오히려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선 타해 병력이 있는 환자의 경우 의료진이 지속적으로 환자의 집을 찾아가는 ‘퇴원 후 사례 관리’나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치료 서비스를 받는다”며 “이런 서비스 덕에 중증정신질환의 재발과 입원율이 낮아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임락근/이현진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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