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랩] 논란의 최저임금 8350원 근거 …차가웠던 '산입' '적용' '자료'

입력 2018-07-20 09:54  

뉴스래빗 데이터저널리즘, [DJ래빗]
15차 최저임금 전원회의록 전수 키워드 분석

예년엔 없던 두 키워드, '산입'과 '적용' 확인
뜨거운 감자 '최저임금 산입 및 확대 적용'

빈도 높아진 '자료', 설득 효과는 '제로'
'효과 주장 뒷받침할 자료 내라' 공방전

서민 & 사장 고충, 제대로 반영됐을까요?




2019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인상률은 10.9%.

지난해 즉 2017년과 2018년 사이의 인상률 16.4%엔 못 미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려면 올해 인상률은 15.7%는 됐어야 합니다. 문 대통령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인상률 10.9%는 이명박 정부 시절 평균 인상률 5.2%, 박근혜 정부의 7.5%보다는 큽니다. 보수정권 10년 시절과 비교하면 문재인 정부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은 매해 2~3배 뛴 셈입니다.

인상률 10.9%를 어느 시절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큰 숫자일 수도 있고 작은 숫자일 수도 있습니다. 늘 노동자 측은 인상률이 낮다고, 사용자 측은 변함없이 높다고 아우성칩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최저임금법 개정안' 때문에 실질 인상률이 9.8%라고 주장합니다. 사용자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두 자릿수 인상률이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고 소상공인의 경영을 어렵게 만든다고 맞섭니다. 늘, 변함없이 말이죠.

최저임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민들 입장에선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리기만 합니다.

뉴스래빗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파헤칩니다.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을 결정하기까지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회의록(이하 회의록)을 분석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는 2018년 1월 26일부터 7월 14일까지 총 15차 열렸습니다. 뉴스래빗은 PDF 파일 형식의 회의록 15개에서 모든 문장을 추출했습니다. 분석 대상 문장은 총 124개 단락, 단어는 3055개였습니다. 추출한 내용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제거합니다. 회의 날짜, 장소, 참석인원 등 논의 주제와 관련 없는 내용을 뺐습니다. 남은 문장들을 대상으로 형태소 분석을 했습니다. 명사, 동사, 형용사 등 문장성분을 구분했습니다. 그 중 명사만 골라 빈도수를 측정, 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주 등장한 주요 키워드를 선별했습니다.

키워드를 빈도별로 표현한 단어구름(TEXT CLOUD)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 2018년 최저임금 회의록 키워드 단어구름
▽▽ 단어 크기가 클 수록 자주 등장한 키워드


#1. 4년 내내 언급된 단어들: '근로자', '최저', '임금'

뉴스래빗은 2017년에도 회의록을 분석했습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연도별로 어떤 단어들이 가장 많이 쓰였는지 알아봤죠. 결과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이중 근로자·최저·임금 세 단어는 3년 내내 높은 빈도수 순위에 포함됐습니다.

2018년 회의에도 역시 세 단어가 높은 빈도수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15차례의 회의를 통틀어 '임금'이 148회, '최저'가 121회, '근로자'가 39회 언급됐습니다.

아무래도 '근로자'의 '최저' '임금'을 결정하는 회의인지라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세 단어를 제외하고 제시(95회), 의견(83회), 필요(46회), 적용(40회), 인상(39회), 논의(36회), 산입(31회)가 많이 언급됐습니다.



#2. 예년엔 없던 두 단어, '산입'과 '적용'
= 2018 뜨거운 감자 '최저임금 산입 및 확대 적용'



2018년 회의록에 자주 언급된 10개의 단어 중 예년에 없었던 단어는 '산입'과 '적용' 2가지입니다. 각각 31, 40회씩 언급됐죠.

산입과 적용. 도대체 무엇을 계산(산)해서 넣고(입), 어떻게 적용하겠다는 뜻일까요. 그 주요 맥락은 여기에 있습니다.

2018년 5월28일 국회에서 통과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따라 내년부터 최저임금 '산입' 범위가 확대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개정안 골자는 달마다 지급되는 정기 상여금, 식비, 교통비 등의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하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쉽게 비유해보겠습니다.
대학생 래빗이는 부모님으로부터 한 달에 용돈 30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우등생 래빗이는 장학금을 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용돈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죠.

부모님은 흔쾌히 35만원으로 올려주시며 조건을 하나 달았습니다.

"다만 앞으로 휴대폰 요금은 네 돈으로 내어라."

휴대폰 요금이 용돈의 범위에 '산입'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용돈이 5만원 올랐지만 휴대폰 요금 10만원이 용돈에서 빠져나가면 결국 쓸 수 있는 돈은 5만원 줄어든 셈입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도 같은 원리입니다. 내년 최저임금이 10.9% 오르지만 산입범위가 확대되어 별도로 지급하던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체감하는 상승률은 10.9%보다 낮은 겁니다. 그래서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최저임금 삭감법'이라고 부르기도 비난하기도 했죠.

#3. 빈도 높아진 '자료', 설득 효과는 '제로'
= '효과 주장 뒷받침할 자료 내라' 공방전

빈도수 상위 10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예년보다 자주 언급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자료'입니다. 모두 26회 사용됐습니다. 2017년 사용자 위원이 언급한 3회와 비교해 약 9배 올랐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사용됐을까요? '자료'가 쓰인 문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례 1) 근로자위원측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효과에 관한 자료'를, 사용자위원측은 '사업의 종류별 구분에 관한 자료'를 각각 제출하고 7월4일(수), 7월5일(목) 전원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키로 함

사례 2) 근로자위원측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인한 최저임금 효과에 대해 자료를 제출하고 이에 대해 설명하고 논의함

사례 3) 사용자위원은 소규모 사업장의 상황이 열악하므로 5인미만 사업장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는 의견 제시

사례 4) 사용자위원측이 2019년 최저임금 사업별 구분적용안 에 대해 자료를 제출하고 이에 대해 설명하고 논의함

근로자위원측은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됐으니 이를 반영해 인상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용자위원측은 모든 사업에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건 불합리하므로 종류와 규모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토론은 언제나 똑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노사의 공방이 계속되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여 차기 회의에서 계속 논의키로 함"

자료 제출 공방을 이어가다가, 생산적인 합의엔 다다르지 못하기 일쑤였습니다. '다음 회의에 다시 논의하자', '다시', '다시'를 반복하다가 결국 사용자위원이 불참한 15차 회의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결국 최저임금은 근로자위원이 제시한 8680원이 아닌, 공익위원이 제시한 835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사용자의원 측이 제안한 '최저임금 사업별 구분적용안'는 기각됐습니다. 이에 반발, 사용자의원 측은 13차 회의부터 마지막 15차 회의까지 출석을 거부했죠.

양측 모두 '자료'는 많이 준비했지만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늘 그래왔듯 최종 결정은 공익위원이 하고 말았습니다. 논란의 최저임금 8350원으로 일단락된 이유입니다.

#4. 서민 & 사장 고충, 제대로 반영됐을까요?

15차 회의록 내용 잘 보셨나요. 위원회 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니 실망하셨나요

뉴스래빗이 '산입', '적용', '자료'라는 3대 키워드에 의미를 부여한 이유는, 2019년 최저임금 8350원을 결정한 올해 전원회의 위원들이 가장 중요시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한 '뜨거운 감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뉴스래빗이 이번 데이터저널리즘을 하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8350원이 많고 적냐가 아닙니다. 늘상 그래왔듯, 최저임금 전원회의가 생산적 토론, 그리고 상호 합의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근로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은 △'답정너(답은 이미 정해져있어, 넌 답만 하면 돼)' 대립각을 세우고, △상대편의 주장마다 객관적인 자료를 내라고 서로 타박한 뒤, △자료 제출을 제대로 했느니 안했느니, △그리고 이 자료의 객관성을 놓고 싸우기를 반복하며 귀중한 회의시간을 허비합니다. 그리고 그 대화방식은 차갑고 건조합니다. 마치 세미나나 학술대회 분위기처럼 말이죠.

혹 청년들은 근로자 위원이 20대의 팍팍한 생활, 높은 실업률 등을 낱낱이 언급하며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했을 거라고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현재 아르바이트생의 하루 벌이로 어떻게 최저수준의 삶을 이어갈 수 있겠느냐' 같은 강력한 항의를 담아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그닥 찾을 수 없습니다.

사용자의원 측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인건비 상승이 얼마나 큰 부담인 줄 아느냐, 장사나 사업을 실제로 해본 사람이 아니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른다'와 같은 애끊는 중소 경영인의 심정을 과감없이 사용자의원이 전달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근로자측과 사용자측의 입장차는 도무지 좁혀질 줄 모릅니다. 서로가 원하는 금액의 차이가 큰 만큼 각론에서의 온도차도 큽니다. 뉴스래빗이 연도별로 산출한 '10대 키워드' 관련 발언을 4년치만 살펴봐도 차이는 명확합니다.

뉴스래빗은 매년 반복되는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계속 지켜볼 예정입니다. '올해는 얼마냐', '얼마 올랐냐'와 같은 결과뿐 아니라 과정까지 이해해야 올바른 결정이 가능하다고 뉴스래빗은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과정이 생산적 토론과 상호 합의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매해 최저임금이 공익위원 중재안으로만 결정난다면, 사용자위원도 근로자위원도 양측 모두 필요 없어질지 모르니까요 !.!

# DJ 래빗 ? 뉴스래빗이 고민하는 '데이터 저널리즘(Data Journalism)' 뉴스 콘텐츠입니다. 어렵고 난해한 데이터 저널리즘을 줄임말, 'DJ'로 씁니다. 서로 다른 음악을 디제잉(DJing)하듯 도처에 숨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발견한 의미들을 신나게 엮여보려고 합니다. 뉴스래빗이 만드는 다른 실험적 콘텐츠를 만나보세요.

책임= 김민성, 연구= 박진우 한경닷컴 기자 dan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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