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규호 기자 ] 《심플, 강력한 승리의 전략》 《일만 하지 않습니다》 《나는 4시간만 일한다》 《나는 덜 일하기로 결심했다》 《하우투 워라밸》….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국내 서점가에도 관련 서적들이 쏟아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업무 등의 시간을 잘 관리하고, 일의 효율을 높이고,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을 실현할 수 있는지 팁(tip)을 주는 책들이다. 회의를 서서 진행하고, 파워포인트 없이 프레젠테이션하고, 2분 내 마칠 수 있는 일은 미루지 않고, 업무 정보를 찾아 장기 휴가를 신청하라는 식이다.
사무직에 특히 '발등에 불'
한국 기업에 고착된 장시간 노동 관행을 하루아침에 주 52시간이란 틀에 맞추려 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노동자, 직장인들이다. 매일 생존경쟁을 벌이는 직장인들이 근로시간 단축 시대라 해서 이전보다 못한 성과(performance)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들이 주목할 ‘근로시간 단축 시대 해법’에 초점을 맞춘 책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다. 개중에는 《야근 없는 회사가 정답이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같은 책도 있다. 노(勞)보다는 사(使) 측의 사고 전환과 적극적 대응을 주문해 눈에 띈다. 하지만 노동자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근로시간 단축 시대를 맞아 ‘알아서 잘해야 하는’ 그런 숙제를 떠안은 느낌이다.
기분만 그런 게 아니다. 52시간 근로제 시행 한 달을 맞아 착잡해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한 대기업 부장급은 이렇게 털어놓는다. “부장인 나도 일 좀 하다 보면 주 52시간은 무조건 넘어가고 많으면 60시간까지 한다. 회사에서 근로시간 단축 7월 시행을 앞두고 이전 6개월간 예비 실행을 했다. 이때부터 오후 6시 퇴근 후 집에 가서 클라우드로 회사 컴퓨터에 접속해 일을 했다. 회사에 남아 일해도 근로시간은 그냥 52시간으로 적어낸다. 야근비, 석식비, 교통비도 못 받는다. 회사가 인력을 마냥 늘릴 수 없으니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부장 얘기는 다시 이어진다. “12시간 분량의 일이 새로 주어지면 담당 직원은 사람을 더 뽑자고 매니저에게 요청해야 한다. 매니저가 사람을 못 뽑으면 그것은 회사 책임이 된다. 하지만 어려운 기업 경쟁 환경을 모르는 바 아니니 12시간 분량 일을 그냥 기존 직원들로 해낸다.”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을 6개월로 늘리자는 등 근로시간 단축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 각계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현장에선 직장인, 노동자들이 그 짐을 오롯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
제 아무리 ‘워라밸 팁’을 익히고 업무효율과 노동생산성을 높이려 해도 개인적 노력만으로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노동자에게만 그 무거운 생산성 향상 요구를 지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노사 자율, 컨센서스 더 중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합의하면 근로시간(기존 주 35시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노동개혁안을 작년에 밀어붙여 결국 통과시켰다. 이 정도 리더십을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사회 전체의 지혜를 모아 내는 실용적인 접근에 머리를 맞대는 성의는 있어야 한다.
근로시간제도는 나라별로 다르고, 강행 법규보다 노사 자율을 더 존중해 주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고의 벤처기업들이 모여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자정을 넘겨 불을 환히 밝히고 연구개발하는 인력이 적지 않다. 유연한 근무 시스템 덕이다. 우리나라처럼 주 52시간의 키높이를 정하고, 그 이상 넘어가면 ‘잘라 버리는’ 그런 법규를 도입한 나라는 많지 않다.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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