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현 정치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의원의 장관 기용 등을 포함한 ‘협치 내각’을 구상하고 있다고 청와대가 23일 밝혔습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인물이 되면 협치 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자연스럽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제안한 ‘대연정’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협치 내각 구상은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개념과는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협치 내각을 구상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국회 여당 상황 때문입니다. 지난 6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후 더불어민주당은 의석 11석을 추가로 확보해 총 130석의 의석수를 갖고 있습니다. 범진보 정당으로 분류되는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을 합쳐도 과반을 간신히 만드는 상황인데요. 정당 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법안을 신속처리대상 안건으로 지정해 조속히 처리하려면 국회법상 의결정족수 5분의3(180표) 이상을 확보해야 합니다. 때문에 집권 2년차인 정부와 여당이 개혁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야당에 장관 자리를 일부 내어주고, 주요 법안에 대한 국회 통과를 약속 받는 것이 협치 내각 구상의 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은 다릅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6월 야당인 한나라당에 여당인 열린우리당과의 연합정부 구성안을 제안했습니다. 이를 대연정이라고 부릅니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정치 인생 숙원이었다고 할 수 있는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대연정을 구상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이 ‘자동’ 당선되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2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면 지역주의가 완화될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은 파격적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이 선거제도 개편에 동의해 준다면 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국무총리를 포함한 장관 임명권을 한나라당에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대연정 제안은 노 전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의지가 투영된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회 의석수가 충분치 못한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구상된 문 대통령의 협치 내각과는 다른 지점입니다. 청와대는 협치 내각 구상이 “당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당시 대연정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데 “다시 민정수석을 하는 동안 참여정부에서 가장 아팠던 일”이라며 기억을 풀어놓았습니다.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란 전제가 달려 있긴 했지만, 한나라당과 연정하고 한나라당에게 내각구성 권한을 넘겨줄 수도 있다는 대통령의 제안은 탄핵반대 촛불을 거쳐 열린우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 준 우리 측 지지자들을 경악시켰다. (중략) 나를 비롯해 참모들도 반대했던 일이어서, 대통령의 진정성을 말하며 옹호하려 나섰지만 감당이 되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도 설득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대통령도 나중에 참여정부 기간 중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대연정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지만, “설령 연정제안 부분은 무시되더라도, 적어도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만큼은 메시지로 살아남아야 그 제안의 보람이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 마저 실패하고 말았다”며 노 전 대통령의 문제의식까지 무시되는 상황을 아쉬워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보기에 서울의 시민사회 진영은 지역구도 타파나 지방화, 분권화, 국가균형발전 같은 과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중략)우리 진보ㆍ개혁진영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민생에나 신경쓰라”며 단칼에 거절해 물거품이 됐습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운을 띄운 협치 내각 구상을 야당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됩니다. (끝) /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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