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의 위스키 기행] 유럽 수도사들이 만든 '생명의 물'… 술 소비 절반이 증류주

입력 2018-07-27 17:05  

<8> 증류주의 르네상스 : 위스키, 브랜디, 白酒

와인 등 과실주 증류한 브랜디
佛 코냐크·아르마냐크産 대표적
헤네시·마르텔·레미 마틴 유명

중국 백주, 연평균 5%씩 성장
도자기서 숙성…香이 품질 좌우
마오타이·수이징팡·우량예 인기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중동과 유럽의 문화 교류를 촉진시켜 유럽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과학, 철학, 의학 등 다양한 학문이 중동 학자들을 통해 유입됐고, 이는 서유럽의 문예 부흥, 즉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서유럽의 지식인층이었던 수도사들은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끈 분야는 연금술이었다. 연금술은 물질이 본래의 성질보다 더 이상적인 상태를 갖추도록 하는 목적에서 태동한다. 연금술의 이름으로 금속을 제련해 금을 생산하거나 불로장생이 가능한 약을 만들기 위해 행해진 무수한 실험에 의해 수많은 발견이 이뤄지며, 유럽의 화학과 의학 기술이 진일보할 수 있었다.

연금술이 가져온 대표적인 발견은 증류주였다. ‘물처럼 투명하지만 향긋한 향이 나고,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으며,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신비의 물.’ 이 물을 수도사들은 ‘생명의 물’이라 부르며 약으로 사용했고, 이는 금세 유럽 전역에 퍼짐과 동시에 각지 언어로 번역됐다.

위스키(게일어: Uisce Beatha)는 물론이고 동유럽의 대표 증류주인 보드카(러시아어: Vodka·водка), 과실주를 증류한 오드비(프랑스어: Eau de vie), 북유럽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아쿠아비트(스웨덴어: Akvavit)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증류주는 생명의 물을 어원으로 삼고 있다. 생명의 물은 대륙 반대편까지 전해졌다. 몽골제국의 확장에 의해 증류 기술이 중국과 고려에 전파되며 백주(白酒)와 소주가 발명됐다. 중국에서는 술을 ‘백약의 으뜸(百藥之長)’이라 여겨 증류주를 가리켜 ‘술의 영혼’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증류주는 세계 주류업계의 르네상스를 열고 있다. 와인과 맥주 등 발효주 시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꾸준한 성장을 보이는 증류주의 활약이 유독 눈에 띈다. 지구인이 소비하는 술의 절반이 증류주일 정도로 활기찬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브랜디, 백주, 위스키는 다양한 술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고급 주류로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브랜디는 와인 등의 과실주를 증류한 술을 칭하는 단어다.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의 코냐크와 아르마냐크 지방의 브랜디이며, 각각 고급 브랜디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위스키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 브랜디는 유럽 상류층이 가장 즐겨 마시던 술이었다. 브랜디가 품은 꽃과 과일 향은 매혹적으로 여겨졌다. 19세기 병충해로 와인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브랜디 생산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위스키에 시장의 패권을 넘겨줬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 중국,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적인 관심으로 브랜디 소비가 늘어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브랜디도 위스키와 마찬가지로 숙성과 블렌딩을 통해 수준 높은 제품을 생산한다. 특히 브랜디의 대표 격인 코냑은 VS, VSOP, XO 등 품질에 의한 등급 체계로 제품을 구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 패션브랜드인 루이비통, 디오르의 모회사이기도 한 LVMH사의 헤네시 외에도 마르텔, 레미 마틴 등이 유명하다.

브랜디만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국의 백주다. 세계적인 주류산업조사기관인 IWSR에 의하면 중국 백주 시장은 2014년까지 과거 5년간 연평균 5%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여왔다. 고급 증류주 시장에서 중국의 백주 시장은 잘 보이지 않는 빙산과 같다. 9할 가까이가 중국에서만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산의 이면에는 세계 증류주 시장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백주는 양뿐만 아니라 품질과 가치로도 인정받고 있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건배주로 사용된 마오타이주는 한 병에 2억원을 호가한다고 보도돼 화제가 됐다. 마오타이 외에 수이징팡(水井坊), 우량예(五粮液) 등의 유명 백주는 수십만원을 넘음에도 인기가 시들지 않고 있다.

브랜디나 위스키와 달리 백주는 도자기에서 숙성한다. 수수 등 중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곡물로 빚은 백주는 중국 음식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품질은 숙성 기간이 아니라 발효부터 숙성까지에 걸쳐 은은하게 묻어 나오는 향으로 결정된다.

생명의 물이라는 한 뿌리에서 태어난 위스키, 브랜디 그리고 백주는 오늘날 고급 증류주 시장에서 패권을 걸고 전쟁하고 있다. 이들은 각국의 농업과 환경에 기반을 둔 원료와 양조 기술을 바탕으로 빚어져 식문화와 전통을 무기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21세기에 황금을 낳는 이들이야말로 수백 년 전의 연금술사가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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