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변동성 커지는 에너지 시장에 대비해야

입력 2018-07-31 19:05  

"피크수요 전 공급 줄어 고유가 우려
수요 급증 한국 경제에 충격 줄 수도
지속성장 위한 경쟁력 제고책 절실"

김영훈 < 대성그룹 회장, 세계에너지협의회 회장 >



세계 에너지 분야는 ‘피크오일’의 공포를 안고 21세기를 시작했다. 1950년대 미국의 지질학자 킹 허버트가 발표한 피크오일 이론은 석유 생산량이 일정 시점에 정점에 달한 뒤 급격히 감소한다는 것이었고 많은 전문가가 2010년께를 그 시점으로 예상했다.

2008년 7월 국제유가가 배럴당 147달러까지 폭등하고 그 여파로 세계 경제위기가 닥칠 때만 해도 피크오일 이론이 현실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가 글로벌 경제를 엄습했다. 그러나 그 즈음 마치 기적처럼 셰일혁명이 시작됐다. 미국 타이트 오일 생산량은 2010년 처음으로 하루 100만 배럴을 넘어선 뒤 2014년 440만 배럴로 급증했다. 세계 석유생산량의 5%에 육박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그러나 이는 산유국들에 악몽이 됐다. 누적된 공급과잉을 버티지 못하고 유가는 2014년 반 토막이 났다. 올 들어 유가가 다소 회복되긴 했으나 장기적으로 배럴당 100달러 시대로 회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피크오일의 반대 개념인 ‘피크수요’ 가설이다. 석유 수요가 머지않은 때 정점에 도달하고 이후 감소세로 돌아선다는 시나리오다. 에너지·화학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컨설팅 기업인 우드매킨지는 최근 피크수요 시점을 2036년께로 예상했다. 지난해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로열더치셸이 2030년 이전에 석유 수요가 정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다.

석유 수요가 장기적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서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석유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도로교통 분야의 변화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 전기 승용자동차와 경트럭 판매대수가 처음으로 100만 대를 넘어섰다. 아직은 전체 자동차 출고량의 1.2%에 불과하지만 증가율은 54%에 이른다.

전기차 보급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노르웨이, 아일랜드,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이 2025~2040년 이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전면 금지키로 했다. 지난해 열린 세계청정에너지 장관회의에서는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30%로 높이자는 ‘30@30 캠페인’이 제안돼 프랑스, 일본, 캐나다, 중국 등 10여 개국이 서명했다. 미(未)서명국들도 자국 전기차 비중 확대 목표를 속속 공표하고 있다. 런던, 파리, 로스앤젤레스 등 많은 국제도시들은 2030년부터 화석연료 자동차의 도시진입을 불허하기로 결의했다.

이 같은 환경변화에 따라 석유 메이저들은 투자비 회수에 수십 년이 걸리는 대형 유전들이 ‘좌초자산’이 될 것을 우려해 유전 개발 프로젝트를 잇따라 취소하거나 보류하고 있다. 노르웨이 컨설팅사인 리스타드에 따르면 2010년부터 5년간 유전과 가스전 개발에 8751억달러가 투입됐으나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투자액은 440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북극해 유전, 캐나다 오일샌드, 아프리카 심해유전 등 대규모 투자 계획이 취소 또는 보류됐다.

문제는 투자축소로 인해 석유 공급이 정체 또는 감소하는 시점과 수요가 본격적으로 축소되는 시점 사이에 간극이 발생해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5~10년 후 수급불균형으로 인해 일정기간 고유가 시대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국내 상황과 결부해 보면 최근 저유가 환경에서 국내 석유 소비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는 점이 매우 걱정스럽다. 석유류 소비는 유가폭락 후 2015년 4.2%, 2016년 7.9% 증가율을 기록했다. 세계 석유소비 증가율이 저유가 환경에서도 1%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상황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에너지 대전환 시대에는 시장예측이 더 힘들어진다. 변동성이 더욱 커지는 에너지 시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경쟁력을 확보해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 분야 모두 대비책 마련에 고심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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