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일본 "에어컨 켜세요" vs 한국 "더위에 무리 말라"

입력 2018-08-01 08:47   수정 2018-08-01 08:50


폭염이 연일 새 기록을 쓰고 있습니다. 2018년은 기상 관측 이후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불볕 더위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웃 일본에서도 온열 환자가 속출하고 있지요.

그런데 일본과 한국 정부의 대응이 사뭇 다릅니다.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연일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더위입니다. 에어컨을 켜세요.”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후생노동성은 “절전을 너무 의식하지 말라. 기온과 습도가 높은 날은 무리하게 전기를 아끼지 말고 에어컨을 사용하라.”고 쓴 팜플렛을 배포한다고 합니다. 도쿄 자치구에선 “실내 온도가 28도를 넘으면 선풍기도 믿지 말고 에어컨을 사용하라”고 권합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력이 부족해진 일본이지만 요즘 ‘절전 캠페인’도 벌이지 않습니다. 에어컨 사용은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란 인식에서죠.

한국 정부가 올여름 폭염을 일찌감치 ‘재난 수준’이라고 규정한 점은 일본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대응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요. 이낙연 국무총리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전기요금에 대해 제한적으로 ‘특별 배려’할 수는 없는지 검토해 달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지시했습니다. 전기요금 걱정에 에어컨도 못 켜는 국민을 위한 발언이라지만 ‘특별 배려’란 표현에 거부감을 표시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 총리는 또 “정부나 지자체 점검에 앞서 본인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본인이어야 한다. 국민 여러분도 더위에 무리하지 마시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한시적으로라도 전기요금을 낮출테니 에어컨을 충분히 켜라”는 얘기는 나오지 않았지요.

정부는 절전 캠페인도 본격화하기로 했습니다. 이달부터 공공기관들이 ‘적정 온도 28도’를 지키는지 살피고, 문 열고 냉방 영업하는 곳을 대상으로 절전 계도를 하겠다는 겁니다. 전력이 부족해지면 ‘개문냉방’ 영업장에 과태료도 부과할 방침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가 재난 수준의 폭염 속에서 일본 정부는 전기료 신경쓰지 말고 에어컨을 켜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전기요금 찔끔 인하를 검토하면서 선심쓰듯 특별 배려하겠다고 했다. 누진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인데 무슨 특별 배려가 필요하냐.”는 글이 올라왔지요.

사실 우리나라에선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을 켜기 두려운 게 사실입니다. 정부에서 ‘에어컨을 충분히 틀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에어컨을 많이 사용했다가 ‘전기료 폭탄’을 맞을 게 뻔하고 그럼 다시 화살이 정부로 향할 테니까요.

한국의 전기료 누진제는 기본 3단계인데, 7~8월(겨울철에는 12~2월) 기간 중에는 4단계로 바뀝니다. 1단계와 3단계간 요금 차이는 3배이고, 한여름에만 그 차이가 최대 7~8배까지 벌어지게 돼 있습니다. 이런 누진제는 유독 주택용에만 적용하고 있구요.

일본에선 누진제를 적용하나 우리만큼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지역마다 또 전력회사마다 다르긴 합니다만 최대 1.6배 정도이지요. 미국 캐나다 중국 등 다른 나라도 누진제 구간별 요금 차이가 최대 1.5배에 그칩니다. 영국 프랑스 등 단일 요금 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도 적지 않지요.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하라”는 민원이 빗발치자 정부는 7~9월에 한해 요금을 ‘조금’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전기 사용량이 일정 구간을 넘어설 때 적용하는 상위 ‘전력량 구간’을 조금 높이는 방식이 유력합니다. 이 경우 일부 가구에 한해 전기요금이 10% 안팎 경감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는 “전기요금을 일시적이라도 많이 낮췄다가는 전기 사용을 장려하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하지만 이런 걱정 자체가 ‘전력이 절대 부족했던 개발도상국 시절의 인식’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정부가 성급하게 탈원전을 선언해 놓고 전력이 부족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인 전기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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