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즉석밥의 비밀

입력 2018-08-01 18:48   수정 2018-08-0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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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문제는 ‘맛’이었다. 1960~1970년대 몇몇 업체가 냉동 인스턴트 밥을 개발했지만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1990년대 초반에도 태원식품과 천일식품 등이 상품화에 나섰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즉석밥의 대명사로 불리는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의 ‘햇반’은 1996년 12월에 등장했다. 당시 햇반 용기는 네모형이었고, 마케팅 포인트는 비상식(非常食)이었다. 집에 손님이 갑자기 올 때 활용하면 좋다는 점을 강조했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이 안정되면서 모양을 둥글게 바꾸고, 판매 전략도 일상식(日常食)으로 바꿨다.

이후 핵가족화와 전자레인지 보급에 힘입어 성장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누적판매량은 20억 개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매출 3000억원에 판매량 3억 개를 돌파했다. 1997년 매출 40억원에서 70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올 들어서도 7월까지 판매량 2억 개를 기록해 연말까지는 4억 개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화려한 성적표의 이면에는 고난과 도전의 역사가 배어 있다. 1989년부터 연구를 시작한 기술진은 처음에 급속탈수로 건조시킨 쌀인 ‘알파미’에 주목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되기 때문에 군인들의 전투 식량 등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편의성이 뛰어난 반면 밥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다음에는 ‘동결건조미’를 활용했다. 밥을 지어서 꽁꽁 얼린 뒤 수분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 역시 제품 복원력은 좋지만 동결 과정에서 조직이 쉽게 부서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찾아낸 비결이 첨단 공법의 무균포장법이다. 반도체 공정 수준의 클린룸에서 살균한 포장재로 밥을 포장하기 때문에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고, 집에서 지은 밥과 똑같은 맛을 낼 수 있었다.

쌀은 신선도와 맛을 살리기 위해 공장에서 직접 도정한 것만 사용하기로 했다. 밥을 담는 그릇도 3중 재질로 구성했다. 공법이 까다로운 만큼 초기 설비 투자비만 100억원이 필요했다. 당시로는 엄청난 돈이었다. 당연히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갓 지은 밥맛’이라는 제품의 핵심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즉석밥이라는 편리성, 집밥과 다를 바 없는 맛의 우수성, 상온 보관의 유통 장점까지 갖춘 히트상품이 탄생했다. 제품명도 ‘방금 만든 맛있는 밥’이라는 뜻을 담아 햇반으로 지었다. 2000년대 농심과 오뚜기 동원 등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시장이 커졌다. 수출도 늘어났다.

“한국인의 힘은 밥심”이라는 말처럼 밥에는 각종 영양소뿐만 아니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우리의 즉석밥이 더 넓은 시장을 개척하며 세계인의 혀를 사로잡길 기대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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