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보다 한 발 빠른 '엔젤클럽'… 스타트업에 경영조언까지

입력 2018-08-05 17:29   수정 2018-08-06 08:43

엔젤투자 '열풍'

청년 창업 돕고 절세까지…엔젤투자 '붐'

등록클럽 200곳 넘어…스타트업 키우는 '보람'
상장하거나 M&A 때 지분 팔아 투자이익 회수
3천만원까지 전액 소득공제…조합투자도 인기



[ 마지혜 기자 ] 치과의사 최성호 씨가 3년 전 결성한 ‘A.I.(Accredited Investors) 엔젤클럽’ 회원들은 짝수 달 셋째 주 토요일마다 서울 동숭동에 있는 대학로창업카페에 모인다. 매번 투자받으려는 기업 세 곳의 대표를 초청해 사업계획을 듣고 투자 여부를 검토한다. 의사 9명과 대기업 임직원, 벤처캐피털(VC) 직원, 변리사, 세무사 등 29명으로 구성된 이 클럽은 회원들의 전문지식 등을 활용할 수 있는 바이오, 의료, 건강관리 분야에 주로 투자한다. 스마트 보청기를 개발하는 ‘더열림’, 인공지능 기반으로 의료데이터를 분석해 암을 진단하는 프로젝트를 하는 ‘메디픽셀’ 등 6개 기업이 올해 투자를 받았다. 이 클럽은 창립 이후 23개 기업에 42억원을 투자했다.


◆“수익 기대에 창업자 돕는 보람도”

‘A.I. 엔젤클럽’처럼 개인들이 동호회 형태로 모여 함께 투자하는 ‘엔젤클럽’이 늘고 있다. 혼자 움직일 때보다 유망기업을 발굴하기 쉽고, 회원 간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의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한국엔젤투자협회에 공식 등록한 클럽 수는 203개다. 2000만원 이상의 엔젤투자 경력을 갖춘 적격투자자 1명을 포함해 5명 이상의 회원이 모이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협회에 등록할 수 있다.

협회에 등록한 엔젤클럽은 연 20억원까지 한국벤처투자가 운용하는 엔젤투자 매칭펀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일종의 투자 레버리지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엔젤클럽 회원은 주로 의사와 변호사, 변리사, 금융회사 임원급 이상,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출신 벤처기업인 등이다. 지인이나 업무상 관계 맺는 사람들을 통해 유망기업 정보를 접하기 쉽고, 엔젤투자의 소득공제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고소득층이기 때문이다.

엔젤클럽 결성과 가입은 대부분 지인 간 이뤄진다. 투자 대상을 찾는 ‘소싱’도 클럽 멤버들이 맺고 있는 관계망을 통하는 사례가 많다.

한국엔젤투자협회가 운영하는 엔젤투자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엔젤투자지원센터는 전국에 있는 엔젤클럽 현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A.I. 엔젤클럽’ 등 일부 클럽은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 문의를 받는다. 협회가 투자를 희망하는 스타트업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한 자산운용사 사장도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친구 소개로 엔젤클럽에 들어가 6년째 활동하고 있다. 이 클럽은 10여 명의 회원이 돌아가면서 한 기업에 약 1000만원씩을 투자한다. 자기가 투자할 차례가 아니어도 기업이 유망하다고 판단되면 추가로 투자할 수 있다.

이 운용사 사장은 “패기 넘치는 젊은 사업가들의 아이디어를 듣다 보면 열정에 매료될 때가 많다”며 “투자한 기업에 대해선 변리사인 회원이 창업자의 특허 출원을 돕고, 대기업 정보기술(IT) 담당 임원이 기술 조언 등을 해준다”고 말했다.

엔젤투자는 고위험 고수익형 투자다. 20곳에 투자해 1곳이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한 엔젤투자자는 “투자 위험을 잘 알지만 한 번쯤 ‘대박’을 낼 것이란 기대와 함께 젊은 창업자가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 동참한다는 자부심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람도 있다”고 말했다.

◆세제혜택 확대로 불붙은 엔젤투자

엔젤클럽뿐 아니라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및 지원 기관)나 기술지주회사 등의 법인 또는 전문성 있는 개인 엔젤투자자 등이 결성한 개인투자조합(사모펀드)에 가입하는 방식으로도 엔젤투자를 할 수 있다. 홍봉기 한국개인투자조합협회 사무총장은 “컨설팅업 등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펀드매니저 역할을 하는 업무집행조합원(GP)으로 나서서 조합을 설립하고, 독립법인대리점(GA) 등에서 활동하는 재무설계사의 도움을 받아 조합원을 모집하는 사례가 많다”며 “개인이 직접 투자할 때와 똑같이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투자 전문성이나 포트폴리오 구성 등에 장점이 있어 조합 결성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엔젤투자는 1990년대 후반 시작된 벤처 열풍을 타고 2000년대 초 활발했다. 하지만 벤처 거품이 꺼진 2004년 이후 침체 일로를 걸었다. 정부는 혁신창업 장려를 위해 2012년 20%였던 엔젤투자에 대한 소득공제 비율을 2013년 30%, 2014년 50%로 높였고, 2015년 100%(1500만원까지)로 상향 조정했다. 올해부터는 3000만원까지 100% 공제 혜택을 준다.

이상창 중소벤처기업부 투자회수관리과장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창업 열기가 높아지는 추세와 맞물려 엔젤투자를 하면 누릴 수 있는 세 혜택이 늘면서 엔젤투자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며 “엔젤투자에 더 많은 국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 방안을 마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엔젤투자

개인이 예비 창업자나 창업 초기 기업에 하는 투자. 자금 지원과 경영 자문 등으로 기업 가치를 올린 뒤 기업이 코스닥시장에 상장하거나 대기업에 인수합병(M&A)될 때 지분 매각 등으로 투자 이익을 회수한다.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방식이 있다.

◆직접투자=개인이 기업과 직접 접촉해 투자하거나 여럿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기업설명회(IR) 등을 함께 듣는 엔젤클럽 활동을 통해 자기 책임하에 투자.

◆간접투자=49명 이하의 개인이 모여 결성하는 개인투자조합(펀드)에 출자하는 방식. 투자 대상 선정은 펀드매니저 역할을 하는 업무집행조합원(GP)이 담당.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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