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쇼'로 끝난 '컵파라치' 규제

입력 2018-08-05 18:35   수정 2018-08-06 13:15

환경부, 단속기준 하루새 번복
자율규제 참여한 업계만 혼란

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 김보라 기자 ] “처음으로 과태료를 부과받는 곳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게 기준이 되겠죠. 한 달간 정부의 ‘컵파라치 쇼’에 놀아난 기분입니다.”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 주인은 환경부의 일회용컵 사용 규제에 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매장 내 머그컵과 유리컵 100여 개를 새로 사들이고, 설거지 전담 직원 2명을 새로 고용했다. 매장 내 일회용컵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2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는 환경부의 단속에 대비한 것이었다.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금지’ 제도는 지난 5월 환경부가 내놓은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의 하나다. 스타벅스, 이디야, 투썸플레이스, 파스쿠찌, 맥도날드 등 21개 커피와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자발적 협약에 참여했다. 텀블러 등 다회용컵을 가져오는 소비자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게 핵심이었다. 또 단속을 통해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이 적발된 업체에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당시 다수가 자발적 협약에 참여한 속내는 따로 있었다. 자원재활용법 제10조와 제8조에 따르면 사업자가 일회용품을 스스로 줄이기 위한 협약을 환경부 장관과 체결해 이행하면 예외적으로 일회용품을 사용하거나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협약에 참여해야만 일회용품을 합법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돌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업체가 늘었다.

한 달의 계도 기간이 끝난 7월 말, 환경부의 입장은 돌변했다. 협약을 맺은 곳이든 아니든 예외 없이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장에선 “계도기간이 너무 짧고, 현장 실정과 맞지 않다”며 “제재 및 처벌 방식이 강압적이다”는 볼멘소리가 쇄도했다. 점주와 매장에 온 소비자들 사이에선 말다툼도 벌어졌다. 단속 기준도 지방자치단체별로 달라 환경부는 지난 1일 긴급 간담회를 열어 공통 기준을 마련했다.

환경부의 공통 단속 기준에는 △다회용 컵을 매장에 적정하게 비치하고 있는지 △직원이 규정을 고지하고 테이크아웃 의사를 확인했는지 △고객이 테이크아웃 의사를 밝혔는지 여부 등이 포함돼 있다. 사진 제보를 통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일명 ‘컵파라치 제도’는 제외했다. 대신 지자체 담당자가 현장에서 질의응답을 통해 적발하도록 했다. 단속 기준이 모호해지면서 점주들의 혼란만 커졌다.

업계는 허탈하다는 목소리다.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 없이 점주에게 과태료부터 매기겠다고 한 것은 신호위반의 벌금을 신호등에 매기는 격”이라며 “머그컵을 만드는 회사만 재미봤다”고 했다.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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