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떠난 실직자들, 대거 흡수하는 KAI

입력 2018-08-08 18:00  

경력직 10명중 4명 조선사 출신

선박 설계하던 노하우 바탕
3~6개월 직무교육 뒤 투입
"항공·조선 직무 유사성 높아
업무 습득 빠르고 쉽게 적응"

항공정비분야도 조선 인력 흡수
조선업 실업문제 해소에 기여



[ 박상용 기자 ] 경남 거제에 있는 한 대형 조선사에서 7년간 배를 설계했던 김모씨는 2016년 7월 직장을 떠났다. 수주 절벽과 경영난이 심해지자 회사는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섰고 김씨도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새 일자리를 찾기로 했다.

김씨가 그해 9월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다른 조선사가 아니었다. 그는 국내 최대 항공기 생산 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새출발을 했다. 김씨는 KAI에서 소형 헬리콥터에 설치되는 무기의 전자장비를 설계하고 있다. 배를 설계하던 실력을 바탕으로 항공 설계 교육을 거쳐 항공기 제조업계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3~6개월 교육 후 핵심 사업에 투입

KAI가 경기 침체 여파로 조선소를 떠난 인력들을 경력직으로 대거 채용하고 있다. 선박 설계 경력이 있는 우수 인력을 흡수하면서 조선업 실업 문제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8일 KAI에 따르면 이 회사가 올 들어 지난달까지 채용한 경력직 근로자 193명 가운데 55명(28.4%)이 조선업 출신이다. 2016년에는 207명 중 72명(34.7%), 지난해엔 249명 중 133명(53.4%)이 조선업계에서 KAI로 이직했다. 지난 2년7개월간 채용한 경력직 10명 가운데 4명꼴이다.

KAI 관계자는 “개발 인력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조선업계에서 고급 인력이 유출되기 시작했다”며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업계 출신을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KAI에 취업한 조선 인력은 3~6개월간 항공기 제작에 필요한 직무 교육을 받는다. 항공과 조선은 수송 기계를 제조한다는 점에서 직무 연관성이 높아 조선업체 출신이 빠르게 업무를 습득한다는 게 KAI 측 설명이다.

경력직으로 채용되는 조선 인력은 주로 30대로, 선임이나 과장급이다. 교육을 마친 뒤에는 한국형 전투기사업(KF-X)을 비롯해 소형 민수헬기, 무장헬기(LCH, LAH) 등 KAI의 핵심사업 분야에 투입되고 있다. KAI는 올해 KF-X, LCH·LAH 개발 등에 38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어서 인력 수요가 꾸준할 전망이다.

◆신사업 MRO로 추가 채용 기대

신사업인 항공정비(MRO) 분야에서도 적지 않은 조선 인력을 흡수할 전망이다. KAI는 연말부터 MRO 사업체인 한국항공서비스(KAEMS)를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KAEMS는 최근 법인 등록을 마치고 국토교통부의 정비조직인증 절차에 들어갔다. KAEMS는 연말부터 국내 민항기 정비 업무를 시작할 계획이다.

KAI는 KAEMS가 2026년까지 2만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1조68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조원 KAI 사장은 지난 3월 ‘항공MRO 전문업체 설립을 위한 발기인 조합 합의서 체결식’에서 “MRO 사업은 국내 항공기 운항의 안전성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KAEMS 본사가 경남 사천시에 있기 때문에 인근에 있는 성동조선 퇴직 인력을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달 경남도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KAI의 신규 사업인 항공정비사업과 관련해 성동조선 인력을 채용하게 하려고 정부 관계 부처 및 회사 측과 협의 중”이라고 했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성동조선은 800여 명인 인력을 400명 선까지 줄이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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