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답 찾는 문재인 대통령

입력 2018-08-09 10:49   수정 2018-08-09 10:58



(조미현 정치부 기자) “규제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장. 문재인 대통령은 “영국이 시작한 자동차 산업은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고 말았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차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이 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흔들며 자동차 속도를 맞추도록 한 19세기 영국의 ‘붉은 깃발법’을 영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지목한 것입니다.

당초 청와대가 사전에 기자들에게 배포한 연설문에는 ‘규제 때문이다’는 문구가 없었습니다. 평소 원고대로 연설을 하는 문 대통령입니다. 아주 사소한 문장이지만, 문 대통령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덧붙인 문구에서 규제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단적으로 나타났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문 대통령이 현장 행보를 늘리면서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얘기가 청와대에서 나옵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 식당에서 모바일 결제를 한 경험이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한 은산분리 완화로 귀결됐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경기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기기 현장 방문 행사에서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정소명 군의 어머니 얘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현재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인슐린 분비 기능을 상실한 소아당뇨를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혈당검사를 하고 인슐린도 넣어야 해서 직접 해외 사이트에서 제품을 구입해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현행법 위반이라 7차례 조사를 받았다고 토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정 군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악수를 건넸습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이고,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개탄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달 한 두차례 더 현장에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 대통령의 현장행보를 보면서 지난 2016년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이뤄진 대구에 취재를 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방문간호사와 함께 70대 노인 김모씨의 집을 방문했는데요. 김씨는 교통사고로 왼쪽 골반이 부러지고 근육도 오그라들어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렇게 누워 있는 시간이 10년이 됐다고 했습니다. 오래 누워있는 환자들은 등에 욕창이 생깁니다. 하지만 함께 방문한 간호사는 소독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원격으로 의사와 상담은 가능하지만, 현행법상 진료나 처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간호사에게 소독을 받으려면, 간호사가 환자의 욕창 사진을 찍어서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보여주고 지시서를 받은 뒤 다시 가정에 방문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매일 소독을 받아야 하는 환자였습니다. 결국 비전문가인 부인이 소독을 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부인마저도 수년 전 암 선고를 받고 치료를 받은 노인이었습니다. 소독과 같은 가벼운 처치를 원격으로 처방할 수 있는 일본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원격의료는 시범사업만 올해로 30년째입니다. 문 대통령의 지지층이 의료 영리화를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는 정책이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이 규제 혁신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원격의료 분야의 규제 혁신이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문 대통령이 선입견 없이 원격의료 현장에도 방문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은산분리 완화와 의료기기 규제 완화처럼 현장에서 답을 찾을지 모를 일입니다. (끝) /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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