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규제 20개 깬다
편의점 藥·안경 온라인 판매, 기득권 벽 넘어야
원격의료 등 일부 사안은 공론화 거쳐 추진
"문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여야 성공"
[ 이태훈 기자 ]
정부가 꼽은 20개 핵심 규제개혁 리스트에는 수도권 규제 완화, 원격의료 허용,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 산악 케이블카 허용 등 그동안 좌파 시민단체가 반대해오던 것이 다수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도 전 정권에서 관련 규제 완화에 대부분 반대했었다. 결국 문재인 정부 핵심 지지층인 시민단체와 여당 내 반발을 정면 돌파할 수 있을지가 규제개혁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명단은 골랐는데…
리스트에는 차량 공유 서비스 활성화, 안경 온라인 판매 등 각종 이익단체의 반발이 큰 규제도 있다. 내국인 카지노 설립 허용, 온라인 게임 현금 이용한도 폐지 등 사행성 조장 논란을 불러일으킬 민감한 사안도 들어갔다. 정부는 비교적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고,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것들부터 매달 한두 건씩 규제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 완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안은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도 검토 중이다.
20개 핵심 규제개혁 리스트는 그동안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을 위해 기업들이 꾸준히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던 것들 위주로 짜여졌다. 국내 공장이 해외 이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지목돼온 수도권 규제가 대표적이다. 1982년 공포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30년 넘게 시행되고 있는 수도권 규제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손질 대상에 올랐으나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특히 좌파 시민단체는 수도권 규제를 풀면 환경오염 가능성이 높고 대기업만 이익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도 가뜩이나 부족한 지역 투자가 더욱 움츠러들 것이라며 수도권 규제 완화에 극히 부정적이다.
원격의료 허용 등 의료산업 활성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의료기기 인허가 규제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말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민단체는 원격의료가 의료 민영화의 사전 단계며, 이것이 허용되면 일부 대형 병원만 혜택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전 정부에서 원격의료 허용에 반대했었다.
산악 케이블카 도입은 10여 개 지자체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요구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환경단체, 문화재청 등과 일부 민주당 의원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의 경우 강원 양양군 등 관련 지자체가 20년 넘게 설치를 추진했으나 “산양 서식지를 파괴할 수 있다”는 환경단체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장단기 혁신과제를 추린 것”이라며 “조율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엔 성공할까
각종 이익단체가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그동안 발목을 잡고 있던 사안들도 규제 개혁 대상에 들어갔다.
리스트에 포함된 안경 온라인 판매 허용은 안경사협회와 안과 의사들이 “소비자의 안전”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도수가 있는 안경은 의료기사법에 따라 온라인에서 팔 수 없다.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하고 안경사가 도수를 맞춰야 한다는 게 안경사들과 의사들의 논리다. 하지만 미국 호주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자신의 시력만 알면 온라인에서 안경을 살 수 있다. 편의점 상비약 판매 품목이 확대되지 않는 것도 약사들의 기득권에 가로막혀 대다수 국민이 불편을 겪는 대표적 사례다.
선진국에선 보편화된 우버 등 차량 공유 서비스는 국내에선 불법이다. 이 서비스를 허용하려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택시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정부와 정치권 모두 법 개정에 소극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한 20개 규제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 대통령이 핵심 지지층의 반발에도 흔들리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 지지자 중에는 좌파만 있는 게 아니라 혁신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발표하자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은산분리 완화를 위해서는 당 차원에서 정책의총을 열고 당론을 변경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20개 규제개혁 과제가 추진되면 시민단체와 가까운 당내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반발이 더 거세질 전망이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 반발하는 당내 의원들을 직접 설득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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