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일부에선 이 두 요인 모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의도적으로 금속 값을 떨어뜨린다는 음모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 시동을 걸고 있는 미국의 인프라 투자가 제대로 진행되려면 금속 값이 떨어지는 게 유리하다는 가설입니다.
이날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는 베이스 금속 스팟 가격 지수가 4% 이상 하락했습니다. 차트로 보면 하락장세가 본격화되는 모양새입니다.
구리는 2017년 7월 이래 가장 낮은 메트릭 톤당 5903달러로 2.3% 하락했으며 알루미늄은 2.1% 하락한 2027달러를 기록했습니다.
팔라듐은 5% 하락했으며 아연은 3.1% 내려 2년만에 최저치인 2377달러로 떨어졌습니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진 금조차도 0.9% 미끌어져 1180달러를 기록하면서 강력한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1200달러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LME 베이스 금속 6종의 하락률을 모두 더하면 25%가 넘어 2011년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과 터키 이슈로 세계 경제가 악화되고 궁극적으로 원자재 수요가 감소 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중국에선 미중 무역전쟁속에 산업생산, 고정자산 투자 및 소매판매 등 경제 지표가 줄줄이 악화되면서 위안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터키 리라화는 이날도 5% 가량 올랐지만, 대신 인도와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중앙은행은 3개월만에 4번째로 금리를 인상했습니다.
구리 가격은 이날 세계 최대 광산인 BHP빌리턴의 노조가 파업없이 임금협상을 타결할 것이란 관측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 이날 달러인덱스가 96.68까지 오르는 등 달러 강세가 이어진 것도 금속 값 약세의 배경입니다. 세계 금속값은 원유와 마찬가지로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통상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떨어집니다.
CFTC(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데이터에 따르면, 구리 선물 및 옵션에 대한 숏 포지션은 사상 최고 수준인 8만3000개에 달하고 있습니다.
마침 CNBC 방송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인프라 프로젝트에 미국산 설비 사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행정명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 내 철강, 기계, 기자재 수요를 늘리겠다는 취지입니다.
주목할 건 감세, 규제완화에 집중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 경제살리기를 위해 인프라 투자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조5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철도와 가스관, 광대역 통신망을 비롯해 대규모 공공기반시설 프로젝트를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겁니다.
인프라 투자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예산입니다.
안그래도 내년이면 재정 적자가 1조달러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만큼 과연 인프라 투자가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을 지 의문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리 등 금속값이 폭락하면 한결 부담이 덜어지겠죠.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수출에 불리하다며 달러화 강세를 부담스러워했지만, 그동안 관세 부과와 무역협정 개정 등을 통해 무역구조를 상당히 바꿔놓았습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미국 수출도 잘된다면 미국 입장에선 더할 나위없는 금상첨화겠지요.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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