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대 기금 고갈 후 보험료 납부세대엔 '재앙'
여러 세대 간 미리 부담을 나눠서 지도록 해야
안동현 < 서울대 교수·경제학 ahnd@snu.ac.kr >
최근 언론에 발표된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 개편안에 대해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현행 9%인 보험료를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의무가입 연령(60세)과 수급 연령(65세)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안이 제시됐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편안에 국민 청원만 2000건에 육박할 정도로 민심이 들끓고 있다.
이론적으로 연금은 어떤 방식이든 수지가 형평을 이룬다면 고갈될 수 없다. 그게 적립식이든, 부분적립식이든, 부과식이든, 어떤 방식이든 그렇다. 최소한 처음 연금이 출범할 때 쌓인 기금만큼은 남아 있어야 한다. 대표적 적립식인 미국의 사학연금(TIAA-CREF)의 예를 들어보면 가입자는 개인별로 기여형 독립계좌로 관리된다. 따라서 은퇴 후 자신의 계좌에서 그동안 운용된 원리금을 받아간다. 낸 만큼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금이 고갈될 이유가 없다. 현행 기여형 퇴직연금과 같은 구조다.
국민연금은 부분적립식을 택하고 있지만 적립식의 핵심인 수지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에 고갈된다. 즉, 누군가 낸 금액에 비해 더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혜택을 받았는가? 1988년 연금이 출범했을 때 가입한 사람들이 가장 큰 혜택을 입었다.
당시 보험료율은 3%, 소득대체율은 무려 70%에 이르렀다.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로 출발했다. 이후 보험료율은 93년 6%, 98년 9%로 인상된 후 20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
반면 소득대체율은 98년 60%로 하향 조정된 후 2008년 50%를 거쳐 현행 40%로 됐다. 수지 균형을 완화하려면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대체율을 낮춰야 하는데 보험료율을 높이면 반발이 거세니 대체율만 낮춰 왔다. 그렇다 보니 은퇴 후 받는 절대 금액이 낮아져 ‘용돈연금’이란 오명을 쓰게 됐다. 하지만 수익률 측면에서 보면 현행 9%, 40% 수치도 전 세계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실질 소득대체율로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기금 고갈 이유로 저출산·고령화를 들지만 결정적 사유는 아니다. 물론 예측 오차로 인해 기금이 줄어들지만 적립한 걸 오차 범위 내에서 제대로 준다면 고갈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기금이 고갈되면 어떻게 되나? 약속한 연금급여는 지급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정부도 연금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배짱은 없다. 따라서 당시 근로세대로부터 수급한 보험료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일명 부과식이다. 부족하다면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데 세금이 늘어나니 부담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때 근로세대는 얼마만큼 보험료를 내야 할까? 최소 20% 언저리로 추정된다. 현행 독일의 연금 보험료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부 학자들이 기금 고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런 낙관적 견해에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독일은 1992년 인구가 8000만 명 정도였고 현재 8300만 명 수준으로 지난 25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 연금수급자와 보험지급자 간 인구에도 큰 변화가 없다. 이를 경제학에서 안정상태(steady state point)라고 하며 부과식이 유지 가능한 이유다.
한국은 고갈 시기로 예상되는 2050년대 중후반에 과연 우리 인구나 경제 상황이 안정상태에 진입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받을 사람 대비 낼 사람이 계속 적어져 궁극적으로 보험료율은 계속 높아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부터 2040년대에 태어날 세대, 즉 당시 보험료를 납부할 세대에게는 한마디로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필자가 몇 년 전 공청회에서 보험료율 인상 없이 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참석자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 가서 그때 보험료를 납부할 사람들에게 허락받고 오라고 비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연금 제도 자체를 폐지하지 않는 한 이런 ‘기금절벽’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 간에 미리 부담을 나눠 지게 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현재 납부자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연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을 보증하는 것도 고려할 만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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