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美·中 무역협상 재개… 중국판 '삼전도 굴욕'인가

입력 2018-08-19 17:59   수정 2018-08-28 16:47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질서가 재현되는 시대(2차 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와 비교해 ‘네오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부른다)에 한 나라 최고통수권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중요한 문제다. 베네수엘라, 이란, 터키 등에서 겪는 바와 같이 마찰을 빚으면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실물경기는 침체된다.

출범 이후 달러 약세, 고관세 부과, 첨단기술 개발 통제 순으로 숨 가쁘게 전개된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에 중국은 정면으로 대응해 왔다.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중국몽)’ 시대를 꿈꿔 온 시진핑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단 밀리면 중국몽은 한동안 멀어지기 때문이다.

결과는 중국 경제의 불안이다. 올 들어 상하이지수가 20% 이상 급락했다. 지난 2월 초 달러당 6.2위안 선까지 올라간 위안화 가치는 이달 들어 6.8~6.9위안대로 떨어졌다. 상반기 성장률 목표(6.5~7%)를 지킨 실물 경기가 4분기에 6.2%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는 예측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중국이 나온다. 6월 이후 대화 중단 기간이 두 달 이상 길어져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협상이 재개되는 만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정상’급에서 ‘차관’급으로 격하된 데다 실무회의가 이틀만 열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전개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미·중 간 무역협상은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전자는 이번 협상 재개가 ‘트럼프 압력에 대한 시진핑의 굴욕(중국판 삼전도 굴욕: 인조가 항전을 계속했지만 결국 청나라에 굴복한 사건)’이라는 시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한번 승기를 잡으면 밀어붙이는 트럼프의 협상 방식을 감안하면 미국이 의도대로 중국과의 무역 협상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후자는 현 상황에서 크게 변할 게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세계 경제 주도권 싸움은 그 자체가 ‘타결’ 혹은 ‘합의’와는 거리가 먼 이분법(dichotomy)적 문제인 데다 양국 간 경제발전 단계 차이가 워낙 커 어떤 방식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줄어들기는 어렵다는 근거에서다.

양 극단론 속에 절충점은 없는가. 미국 내에서는 장기간 지속된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피로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1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도 미국과의 무역 갈등 부담이 커지면서 시진핑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시진핑 모두 절충점 마련이 절실하다.

‘제2 플라자 협정’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미국과 일본 간 무역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양국은 플라자 협정을 통해 대안을 마련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전에도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심해질 때마다 ‘상하이 밀약설(달러화 약세-위안화 절상을 유도하는 묵시적 합의)’이 단골메뉴처럼 반복돼 왔다.

충분한 이유도 있다. 위안화 평가절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학수고대해 온 관심사이자 과제다. 대선 기간부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고 약속한 상태에서 지금까지 이 공약을 지키지 못해 부담을 느껴 왔다. 대중국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는 한 11월 중간선거와 2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복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도 위안화 절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위안화 국제화 과제,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통해 국제 위상을 높이려고 노력해 왔다.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안전통화로서 위안화 기능이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트럼프와 시진핑 정부가 달러화 약세-위안화 절상 폭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으로서는 대폭적인 달러화 약세는 ‘득’보다는 ‘실’이 크다. 무역적자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은 데다 달러자산 평가손실이 커지기 때문이다. 중국도 성장률이 목표 하단선인 6.5%에 근접한 상황에서는 대폭적인 위안화 강세를 수용하기 힘들다.

수출채산성 모델, 환율구조 모형 등으로 위안화 가치의 적정 수준을 추정해 보면 달러당 6.8위안 내외로 나온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잘 반영하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으로 이 선을 겨냥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6월 이후 상관계수가 0.9를 웃돌 만큼 위안화와 동조화 현상이 심한 원·달러 환율도 이런 각도에서 예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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