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해달라.”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서울 종로 북촌한옥마을 주민들은 지난 4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 입구에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마을을 구경하려는 국내외 관광객이 몰리면서 각종 소음과 쓰레기 등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어서다. 국적을 초월한 관광객 등쌀에 지친 마을 주민 중 상당수가 마을을 떠나 9000명에 육박하던 주민은 현재 8000명에도 못 미치고 있다. 유럽 대도시와 동남아시아 휴양지에나 해당될 것 같았던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관광)은 수용 능력을 뛰어넘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주민들의 삶을 침해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합성어다. 2012년 해럴드 굿윈 맨체스터메트로폴리탄대 교수가 관광으로 고통받는 유럽 도시의 문제를 진단하며 자신의 블로그에서 처음 사용했다. 최근 오버투어리즘이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로 확산되면서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 phobia: 관광공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오버투어리즘의 확산은 급증하는 여행 수요가 원인이다. 소비력을 갖춘 중산층이 늘고 저비용항공사와 공유숙박 플랫폼 등 여행비용을 줄여주는 서비스가 증가하면서 누구나 여행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좋아지고 있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지난해 13억2000만 명을 기록한 세계 관광객이 2030년 18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로 퍼지는 오버투어리즘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주민과 관광객 간 갈등은 지난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유럽에서 시작됐다. 한때 30만 명에 이르던 인구가 5만 명 아래로 줄어든 베네치아에선 지난해 시민들이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해마다 관광객이 늘면서 소음과 교통난 등이 갈수록 심해져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국 베네치아시에서 시민들에게 수상버스 우선 탑승권을 보장하고 하루 단위로 크루즈 입항과 관광객 입장을 제한하는 조치에 나서기로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에서도 지난해 격렬한 반(反)관광 시위가 이어졌다. 도시 곳곳에 ‘관광이 도시를 죽인다(Tourism kills the city)’라고 쓰여진 스티커가 등장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관광객들로 인해 도시 곳곳의 환경이 파괴되고 집값 등 물가가 오르면서 일반 시민들의 삶이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시 정부에선 신규 호텔 허가를 중단하고 숙소 임대기간을 최대 90일로 제한했다. 마요르카의 항구 도시 팔마에선 아예 에어비앤비 등 공유숙박 영업을 금지하고 5~10월 성수기 3~4유로의 여행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북촌·전주한옥마을 등 관광객 급증에 ‘몸살’
오버투어리즘은 이제 국내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서울 이화벽화마을에선 2016년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과 쓰레기 등에 참다못한 마을 주민들이 벽화를 지우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주 한옥마을 주민들도 대문 틈이나 낮은 담벼락 너머로 기웃거리는 관광객으로 일 년 내내 대문과 창문을 걸어 잠그고 감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의 나폴리 경남 통영은 케이블카와 해상보도교 등 새로운 관광시설이 들어서면서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2008년 케이블카에 이어 지난해 루지가 개통한 미륵도 일대에 사는 주민들은 주말마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심각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 최대 1만 명이 찾는 동피랑 마을은 100가구에 이르던 주민이 관광객 등쌀을 견디다 못하고 떠나 현재 40가구만 살고 있다.
제주도는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관광세 성격의 환경보전기여금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르면 2020년부터 숙박료와 전세버스, 렌터카 등에 부과할 예정인 환경보전기여금은 관광객 증가로 인한 환경훼손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관광자원과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 NIE 포인트
오버투어리즘의 원인은 무엇이고 지역마다 과잉관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관광수입을 유지하면서 주민의 정주권과 생존권을 지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도 토론해보자.
이선우 한국경제신문 레저스포츠산업부 기자 seonwoo.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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