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시스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꼽히는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투자업계에서 가계부채 위험이 관리 가능 수준을 넘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부채의 질적 구조가 악화됐지만 은행의 대출 태도 완화로 여신이 꾸준히 공급돼 대표적인 부실 징후 지표인 연체율이 안정적인 수준을 나타낸 결과, 가계부채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20일 "한국의 가계부채 위험이 양적·질적 측면과 성장률 등 모든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며 "국제 기준을 적용해 개인사업자를 가계로 분류하고 가계의 사적 부채인 전세보증금을 포함할 경우 올 3월 말 기준 가계부채 규모는 가처분소득의 253%인 2243조원에 달하고, 스위스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계부채 증가율 역시 세계 1위로 위험도는 경계 수준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 개인사업자 여신을 가계여신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여신 채무 불이행 시 최종 책임이 개인에게 부여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같은 자영업자여도 법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어 최종 책임이 법인에 부여된다면 기업여신으로 분류된다.
가계부채 증가를 주도한 경제 주체로 서 연구원은 부동산 투자 목적의 대출자, 즉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를 꼽았다.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높고 현금성 자산이 많지 않아 고 위험 차주(借主)란 평가다. 그러나 개인 신용정보의 제약, 고객관계관리(CRM)의 한계로 우량 차주로 분류되면서 신용대출이 공급됐다고 지적했다.
서 연구원은 "전세 보증금이란 임차인으로부터 부동산을 담보로 차입한 사적 채무로 가계 입장에서 위험을 측정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포함해야 할 채무"라며 "개인의 채무상환능력과 무관하게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만기 2년의 단기 채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질적 측면에서의 가계부채 위험 수준도 매우 높다고 꼬집었다. 전체 가계부채에서 원리금을 상환하는 장기 대출 비중은 최대 20% 수준에 불과하고, 신용대출·부동산 담보대출 등 사용목적을 제한하지 않는 대출 비중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과거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 여파로 지난 4년간 약 100만명 정도의 가계가 투자 목적으로 주택이나 상가를 구매했고, 같은 기간 증가한 가계부채 600조원의 절반 이상을 사용한 것으로 추산했다.
서 연구원은 "원리금 분할 상환 장기 대출 비중을 높이고, 대출자금 용도를 한정하는 등의 기본적인 원칙을 은행과 이를 감독하는 정부가 무시하면서 가계 대출은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부동산 투자 등 레버리지가 높은 투자 목적으로도 대출이 가능해졌다"며 "궁극적으로 가계부채가 단기간에 급증하게 된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8년(외환위기), 2008년(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과 같은 외부 충격이 발생하거나 내부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침체될 경우 가계부채 문제는 쉽게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대부분의 경제 주체가 가계부채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는 부채의 질적 구조 악화, 대출금리 하락에 따른 차주의 이자 부담 감소, 은행의 대출 태도 완화로 인한 지속적인 여신 공급 등을 꼽았다.
아울러 가계부채 부실화를 촉발할 수 있는 변수로 전세가격 하락과 상가 공실률 상승 및 자영업자 폐업 증가,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인상을 거론했다.
전세가격 하락은 512조원의 전세보증금 부채를 떠안고 있는 다주택자에게 상환 부담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상가 공실률 상승 및 자영업자 폐업 증가의 경우 은행의 대출태도 변화를 야기할 수 있고, 경기 침체 국면에서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에 나설 경우에도 은행의 대출 태도가 급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주택 거래 감소 역시 담보 자산 매각을 통해 채무 상환을 이행할 수 있는 만큼 눈여겨 볼 변수로 제시했다.
그는 "현재 부채구조를 감안하면 부실을 촉발할 변수는 가계의 단기 채무 상환 압박이 전개될 수 있는 요인, 그리고 이에 대한 은행의 대출태도와 정부의 정책적 대응 등이 될 것"이라며 "향후 신용대출의 지속적인 증가 여부가 가계부채 부실화 및 정부 주도 구조조정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인터넷 전문은행의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 규제 완화 작업에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서 연구원은 "기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조치라면 구조조정을 위한 여건 마련이 될 수 있고 제 2~3의 인터넷전문은행 허용이라면 신용 확장을 통한 가계부채 구조조정의 미루기 작업으로 해석할 만하다"며 "문제 해결을 미뤄 위험을 계속 키울지,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지 은행 경영진과 정책당국의 향후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계부채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고, 구조조정 적기는 2019년 상반기 이전으로 판단한다"며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도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많아 성공적으로 문제를 미루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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