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 稅制에 역행하는 '성실신고확인제도'

입력 2018-08-2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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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 불성실 전제하는 '성실신고'
세입확대·징세편의주의 벗어나야"

김면규 < 前 서울지방세무사회장 >



조세는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조세법은 어디에 얼마를 부과해야 할 것인가를 규정한 실체적 규정과 조세를 어떤 방법으로 부과하고 거둬들일 것인가 하는 절차적 규정으로 대별할 수 있다. 국민이 납세의무를 이행할 때 과세권자로부터 권리를 침해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주로 절차적 규정에서 비롯된다. 절차적 규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고납세확정제도’다.

납세의무확정제도는 ‘정부부과확정제도’와 ‘신고납세확정제도’가 있는데 현대 국가는 대부분 신고납세확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상속세와 증여세를 제외하고는 모든 세목에 걸쳐 신고납세확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국세청이 ‘성실신고확인제도’를 시행해 신고납세확정제도를 퇴색시키고 있어 우려된다.

신고납세제도는 국가, 국민, 세무대리인이란 삼면경을 통해 바라봐야 한다. 그 초점은 ‘민주세제’와 ‘합리세정’에 맞춰져야 한다. 민주란 국민이 주인이란 뜻이며, 주인이란 스스로 결정권을 갖는 사람을 말한다. 조세제도 역시 국민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민주세제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등장한 것이 1975년 국세기본법이 도입되면서 채택한 신고납세확정제도다. 납세자가 법률에 따라 스스로 신고·납부하면 그것으로 납세의무가 확정되는 제도다.

일제 치하에서 물려받은 과거의 부과과세제도가 국가의 자의적인 수탈행위에 머물렀던 점을 생각한다면 신고납세확정제도야말로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가 오늘날 정착 단계에 이르기까지 70년이 걸렸다. 다만 납세자 신고에 탈루 또는 오류가 있어 성실성이 결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 가지 조치를 마련해 법률적으로 과세권을 보장하고 있다.

첫째, ‘세무조정계산서’ 작성 제도다. 납세자가 작성한 장부 및 결산서에 나타난 소득과 세법에 따라 계산된 소득과의 차이를 세무사가 조정해 과세표준과 세액을 산출·신고토록 하는 것이다. 둘째, 확정된 조세라 할지라도 오류 또는 탈루가 발견된 경우 정부가 이를 조사해 바르게 고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기 때문에 신고납부 확정으로 인한 하자를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징세관청에도 과세권을 담보하는 효과가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신고납세확정제도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또 하나의 전제는 신고납세에 대한 성실성 추정의 원칙이다. 불성실 신고라고 하려면 그것을 주장하는 정부가 입증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세 가지 원칙은 납세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성실신고확인제도는 이런 취지와는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이 문제다. 모든 신고는 불성실하다고 전제, 정부가 제시한 신고기준에 도달하게 신고해야 성실신고자로 확인해 세무조사를 면제하고 세액공제의 당근도 주겠다고 하는 것은 오직 징세편의주의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세제는 무수히 많은 제·개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성실신고확인제도는 비슷한 녹색신고제도를 시행하다가 신고납세확정제도가 탄생하면서 사라진 비민주적이고 낡은 제도다. 그런데 이를 부활해 개인사업자뿐만 아니라 중소 법인사업자에까지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왜 세제의 역사를 거스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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