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업 구조조정 시장 진출
성장금융 '기업구조혁신펀드'에
PEF·증권사 등 자금 절반 투입
유동성 위기 中企에 자금 수혈
구조조정 성공 후 지분매각 차익
대기업은 국책銀이 구조조정 맡고
중소·중견기업은 모험자본이 담당
[ 이지훈 기자 ] 과거 사모펀드(PEF) 운용사로 대표되는 국내 모험자본은 기업 경영권을 인수(바이아웃)하거나 소수 지분을 투자해 초과수익을 얻는 역할에 국한됐다. 하지만 점차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해 회사의 성장을 돕는 스케일업 펀드, 기존 투자자의 투자 회수와 기업 경영 안정을 함께 도모하는 세컨더리 펀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재무안정펀드 등으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분화하는 국내 모험자본이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현장을 조명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본다.
이산화티타늄을 생산하는 코스모화학은 2014년부터 시작된 중국 업체의 저가 물량 공세 속에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다. 부실이 코스모그룹 전체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왔다.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주력 계열사인 코스모화학과 코스모앤컴퍼니를 PEF에 팔기로 했다. 케이스톤파트너스와 에스지프라이빗에쿼티(SG PE)는 2015년 800억원을 투자해 두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코스모화학은 올 1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투자 당시 5000원대였던 주가는 2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모험자본이 주도하는 선제적 기업 구조조정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모험자본, 기업 구조조정 시장 참여
자본 시장이 주도하는 선제적 구조조정 시장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성장사다리펀드를 운용하는 한국성장투자금융투자운용(한국성장금융)은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상시적 구조조정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업구조혁신펀드’ 결성에 나선다고 26일 밝혔다.
기존 채권금융회사 중심 기업 구조조정 방식에서 탈피해 민간 자본시장이 이끄는 구조조정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 펀드에는 PEF 운용사와 증권사 등이 참여할 예정이어서 모험자본의 기업 구조조정 시장 진출로 주목받고 있다.
총 1조830억원 규모로 한국성장금융이 절반인 5415억원을 출자하고, 나머지 절반은 운용을 맡는 PEF와 증권사 등이 끌어모은다. 내년 상반기까지 총 80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투자 대상을 정해놓지 않는 펀드) 5개가 출범한다. 283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펀드(투자 기업을 정하고 자금을 모집하는 펀드) 운용사는 상시 선정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모험자본 육성 기관인 한국성장금융을 중심으로 PEF, 헤지펀드 등 모험자본이 수익성을 고려해 투자하는 민간 주도 기업구조조정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계기업 지원을 위한 제도인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이 일몰된 뒤 국회에 표류하는 상황에서 이번 구조혁신펀드 출범은 자본시장이 주도하는 기업 재편을 가속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10조 민간 구조조정 펀드 육성
기업구조혁신펀드가 투자할 주요 타깃은 유동성 위기에 빠진 중소·중견기업이다.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간·전략산업은 국책은행 등 채권단이 계속 맡는다. 모험자본은 일시적 자금 경색에 빠진 중견기업의 선제 구조조정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턴어라운드에 성공하고, 모험자본은 지분 매각 차익을 얻을 수 있다.
한국성장금융은 1조원 규모로 펀드의 첫발을 떼지만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이 활성화되면 추가 출자를 통해 조성액을 불려나갈 계획이다.
한국성장금융 관계자는 “현재 2조원에 불과한 민간 구조조정 시장 자금을 최대 10조원으로 늘릴 계획”이라며 “회생절차나 워크아웃에 들어간 거대 기업은 법원과 국책은행 등이 사후적인 구조조정을 하되 모험자본은 선제적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두 갈래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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