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현 문화부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의 내년 예산으로 5조8309억원이 편성됐습니다. 지난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2019년 정부 예산·기금 운용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2019년 문체부의 예산은 올해 본예산(5조2578억원)보다 10.9% 늘어났습니다.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국방(8.2%) 예산뿐 아니라 외교·통일(7.5%), 환경(3.6%) 관련 예산 증가율을 웃돌았습니다.
지난해 대비 올해 예산이 삭감돼 내년 증가폭이 더 커보일 수는 있습니다. 문체부의 올해 예산은 전년(5조5971억원) 대비 7.7% 줄어들었습니다. 매년 조금씩이라도 늘던 문체부 예산 규모가 쪼그라든 것은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성과가 미흡했던 사업을 구조조정한 데 따른 영향도 있었습니다. 체육 부문의 예산 감소율이 22.9%로 가장 컸고 콘텐츠 부문 예산도 5.9% 줄어든 데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최순실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정부 부처인 만큼 국민이 예산 증액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의식했을지 모릅니다.
앞서 문체부는 2016년 말 ‘최순실·차은택 예산’ 의혹을 받은 예산 중 일부를 자진 삭감하기도 했습니다. 최순실 씨와 차은택 씨가 직접 기획했다고 알려진 사업을 폐지했고 동계스포츠 영재 선발 육성 지원 사업이나 문화창조융합벨트 전시관 구축 관련 사업 예산을 없앤 겁니다.
하지만 예산 삭감의 아픔은 1년 만에 치유됐습니다. 내년 예산은 올해 줄어든 것보다 더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최순실 논란, 블랙리스트 파동 등으로 잔뜩 위축됐던 문체부 분위기가 예산 증액으로 반전된 것입니다. 올 2월 성황리에 치른 평창동계올림픽과 ‘봄이 온다’ 공연을 포함한 남북 문화 교류 성과로 부처의 존재감을 높인 덕입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문체부는 남북의 문화동질성 회복을 위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과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 재개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남북 문화 교류에서 앞으로는 관광이 앞장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지난 6월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도 장관은 “정치·군사적인 문제가 해결된 뒤에는 북측이 원하는 경제 교류를 논의하게 될 텐데 이때 관광도 함께 다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 52시간 근로시대를 맞아 삶의 질, 여가 중요성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도 반영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으로 하고 싶은 것 1위에 관광과 여행이 꼽혔습니다. 2위가 문화예술, 4위가 체육활동이었습니다. 모두 문체부의 영역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 크게 줄었던 체육분야 예산(1조4394억원)을 예전 수준으로 늘렸습니다. 부문별로 가장 증가율(21.5%)이 가장 컸습니다. 영재 육성 같은 엘리트체육이 아니라 생활체육 정착을 위한 예산을 늘렸습니다. 어린이들이 놀 수 있고 어르신들이 운동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국민체육센터’ 건립 지원 사업이 올해 42억원에서 내년 580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납니다. 근린생활형 소규모 체육관 건립 지원 사업에 1000억원도 새롭게 편성됐습니다. 올해 25억원이었던 근로자 휴가비 지원도 내년엔 105억원으로 대폭 늘렸습니다. 올해 2만명을 모집하는데 10만명 이상이 신청을 하면서 수요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예산 규모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문화예술 부문(30.9%)입니다. 올해보다 10.1% 늘어난 1조8041억원이 배정됐습니다.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소외층을 챙기는데 신경을 더 썼습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발급되는 문화누리카드는 개인별 지원금이 연간 7만원에서 8만원으로 인상됩니다. 소득이 일정치 않은 예술인에게 액대출 방식으로 생계비나 의료비 등 긴급자금을 빌려주는 ‘예술인 생활안정자금융자’(예술인 복지금고) 제도도 내년 첫 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문체부 관계자는 내년 예산과 관련해 “삶의 질에 대한 중요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여가의 핵심 분야인 문화, 체육, 관광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의지가 예산에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시련의 시기를 겪고 어렵게 원상복구한 예산입니다. 원래 계획한 대로 필요한 곳에 잘 써, 늘어난 예산만큼 국민들의 삶이 문화적으로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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