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사회 이슈에 대해 세대 간 견해차가 뚜렷한 경우가 많다. 급속한 산업화로 개발 이전·이후 세대의 사고방식이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개발 이전 세대는 빈곤 탈출이 최우선이었기에 효용과 효능을 중요시했다. 개발 이후 세대는 부모 세대가 이룬 풍요를 바탕으로 한 발 더 나아가 사물이나 사건에 깃든 의미에 집중한다. 철학 개념을 빌려 설명하면 이전 세대는 ‘존재론적 사고’를 하고 이후 세대는 ‘인식론’에 가깝게 사고한다. 존재론은 사물과 사건의 실존 여부와 쓸모에 집중하고, 인식론은 사건의 의미와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 부모 세대는 효용을 찾고, 자식 세대는 의미를 찾는 셈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의 시 ‘꽃’의 한 대목이다. 존재 개념으로 보면 꽃은 그냥 꽃일 뿐이다. 하지만 인식론적 관점에서는 화자가 이름을 부르자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대상이 다가와 꽃으로 재해석된다.
현대 사회는 기술 발전을 통해 존재론을 지나 인식론 위주의 세계에 접어들었다. 사고방식과 가치의 지향점이 다른 세대 간 의견 대립은 지속될 것이다. 사회적 소통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넘어가는 현상은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필자의 학부 시절 전공인 물리학조차 존재에서 인식으로 시선이 이동했다. 과거 물리학에선 인간이 지켜보건 말건 물체는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양자 세계에서는 대상을 측정하기 전까지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 아인슈타인조차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 개념을 부인했다. 존재론적 사고가 극에 달한 천재였기에, 그 반대편인 인식론으로 건너오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시대 변화를 인식하고 이에 발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인문학 강좌가 열풍이다. 바뀐 시대상을 이해하려는 개발 이전 세대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다. 이후 세대도 이전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 세대의 시대적 당면 과제와 덕목에 대한 존중이 따라야 한다.
사고방식이 단순히 연령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기질적으로 존재 관점으로 사고하는 사람도 있고, 사건의 인식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다. 소통에 필요한 것은 나이나 기질을 떠나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려는 자세다. 김춘수의 시 마지막 대목처럼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모두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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