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8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연 1.50%로 동결했다. 지난해 11월 6년5개월 만에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후 9개월 연속 동결 기조를 유지했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금리 인상 소수의견이 나왔지만 예상보다 심각해진 국내 경기 상황과 대외악재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31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은 본부에서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금통위 회의를 개최하고 기준금리를 연 1.50%로 유지했다. 이로써 한은은 여섯 번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한은 "통화정책 완화정도 추가 조정 여부 신중히 판단"
한은은 금통위를 마치고 발표한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향후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준금리 동결 배경에 대해 한은은 "세계경제는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했다"면서도 "국제금융시장을 보면, 대외건전성이 취약한 일부 신흥시장국에서 환율 급등, 자본유출 등의 불안한 움직임이 다시 나타났다"고 밝혔다.
향후 세계경제 성장세는 보호무역주의 확산 움직임,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 미국 정부 정책방향 등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경제에 대해 한은은 "설비 및 건설 투자의 조정이 지속됐으나 소비와 수출이 양호한 흐름을 보이면서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갔다"며 "지난 7월 전망경로와 대체로 부합하는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자가 둔화되겠지만 소비는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가고 수출도 세계경제 호조에 힘입어 양호한 흐름을 지속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한은은 "앞으로 성장세 회복이 이어지고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며 "국내 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당분간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또한 "이 과정에서 향후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 나갈 것"이라며 "주요국과의 교역여건,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 신흥시장국 금융·경제상황, 가계부채 증가세, 지정학적 리스크 등도 주의깊게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 줄이은 '최저' 지표에 대외변수 산재…금리 향배는?
'고용쇼크'를 비롯한 국내 경기 악화와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변수가 이번 동결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시장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달 중순 발표된 7월 고용지표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수준으로 곤두박질친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2708만3000명으로 작년 7월보다 5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생산·소비·투자 등 실물경기지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만큼 경기 후행지표인 고용이 연말에는 한층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8월 소비심리는 17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기업 체감경기지수 역시 18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집계한 7월 설비투자는 다섯 달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같은달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앞으로의 경기를 보여주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전월 대비 동반 하락해 향후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그동안 금융시장에서는 8월 금통위에서 한은이 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16∼21일 75개 채권 보유·운용 관련 기관 종사자 100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2%가 한은이 8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할 전망이라고 답했다.
국내 경기지표가 악화되고 미중 무역분쟁과 터키발(發) 금융위기 불안이 커지고 있는 만큼 연내 금리 인상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은이 금리인상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경기 여건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연내 기준금리 인상의 타이밍을 놓쳤다는 '실기(失機)론'도 불거졌다.
다만 대외변수에 따라 올 10월 혹은 11월 금통위 때 금리 인상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시장에서는 나오고 있다. 한은이 지난해 6월 이래 이어온 통화정책방향을 틀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그동안 저금리 부작용이 심해지고 있어서 금리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금리인상 명분을 쌓아왔다.
금리인상 요인으로는 대외금리차,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이 꼽히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9월 기준금리 인상은 기정사실화된 만큼 이미 역전된 한국과 미국 간 정책금리 격차는 한층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1.75~2.0%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가 인상된다면 0.25%포인트가 유력하다. 따라서 현재 0.5%포인트인 양국의 정책금리 격차는 다음달에는 0.75%포인트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이 하반기 금리인상 시그널(신호)을 준 바 있지만 최근 국내 경제지표 흐름과 보호무역주의 기조 등에 비춰 경기 하방 압력이 크다"며 "한은이 한미간 금리 격차에 대해 고민하겠지만 10월에 금리인상 시기를 놓치면 올해는 올리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고려하면 이달 초 정책여력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과 같이 한은도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시중에 풀린 유동성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배치되지 않는 선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며 "11월 초에 마무리되는 미국 중간선거가 (미중 무역분쟁 관련) 불확실성을 줄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기준금리 인상이 궤를 달리하는 것은 아닌 만큼 11월 기준금리 인상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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