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年 1.50%…9개월째 동결
경기지표·대외여건 악화일로
전문가 "연내 인상 어려울 수도"
금통위서 2회 연속 소수의견
연내 인상 '불씨'는 살아있어
"통화정책이 만병통치약 아니다
신중히 하는 것 이해해주길…"
이주열 총재, 답답한 심경 내비쳐
[ 고경봉 기자 ]
한국은행이 1년 내내 만지작거리던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결국 3분기에도 꺼내지 못했다. 31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1.50%로 동결함에 따라 올해 금리 인상 기회는 이제 10월, 11월 두 차례밖에 남지 않았다.
한은은 여전히 금리 인상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가계 부채 급증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데다 미국과의 금리차 확대로 자금 유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경기가 조금이라도 나을 때 금리를 인상해둬야 향후 침체기에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금리 인상 여건은 위축되고 있다. 경기 지표가 잇따라 악화되고 고용·소득 지표도 부진하다. 미·중 무역갈등, 신흥국 경제불안 등 대외 요인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한은이 금리 인상에 너무 신중을 기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니냐”는 ‘금리 인상 실기론’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금리 인상 연내 가능할까
올초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한은이 연내에 금리 인상을 한 차례 할지, 두 차례 할지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그만큼 한은의 금리 인상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금리 인상이 가능할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만큼 여건이 좋지 않다는 얘기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파트장은 “올해는커녕 내년에도 금리를 인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며 “4분기 경기 지표가 반짝 회복하거나, 미·중 무역갈등이 완화되거나 하는 이벤트가 있어야 그 명분으로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낼 텐데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오히려 대내외 여건이 더 나빠질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그럼에도 여전히 연내 금리 인상 의지를 밝혔다. 이날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연초에 ‘한국 경제가 잠재 성장률을 벗어나지 않고 목표 수준에 물가가 수렴하면 완화 정도를 줄여나가겠다’고 얘기했고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며 “그 성장 흐름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고 연말에는 물가 목표에도 도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일형 금통위원이 지난달에 이어 두 달 연속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낸 점도 올해 금리 인상 불씨를 살리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은 안팎에선 내수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금리를 올렸다가 통화정책 실패의 비난을 뒤집어쓸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금리를 올렸던 상황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한은은 2008년 8월 금리를 연 0.25%포인트 인상했다가 한 달 후 ‘리먼 파산’ 사태가 터지고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자 빗발치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한 달 만인 10월에 금통위를 두 차례 열어 금리를 연 1%포인트 떨어뜨리는 ‘촌극’을 연출했다.
◆“통화정책 한계” 한은의 고민
금리 인상 실기론에 대한 한은의 초조함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이날 간담회에서 금리 인상 타이밍을 놓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 총재는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급속도로 커졌다”며 “신중히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통화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는 발언도 인용했다. 최근 경제 지표가 경기적 요인이 아닌, 구조적 요인이나 외부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통화 정책만으로 이를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물가가 대표적 사례다. 한은은 금리를 올리기 위한 목표 물가상승률을 2%로 설정해놨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4분기 이후 계속 1%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생활 물가 오름세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복지 차원에서 규제 물가를 누르고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이 총재는 “전기요금 인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정부 정책의 영향이 상당히 컸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 물가가 시장 판단을 교란하는 역할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금리 인상이 늦춰졌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고용 부진과 수도권 주택가격 급등에 대해서도 “경기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면 통화정책으로 대응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 총재는 고용 부진은 대규모 구조조정과 최저임금 인상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고, 수도권 주택시장 과열은 강북 개발 계획 여파에 따른 것으로 해석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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