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모의 데스크 시각] 잔인한 자영업 구조조정

입력 2018-09-02 17:12  

장진모 생활경제부장


너무 잔인하다. 느닷없이 닥친 자영업 구조조정 말이다. 올 들어 이미 수십만 명이 실업자가 됐다. 그 수가 연말께 1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괴담도 나온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육박한다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삭막한 현실이다

공기업, 대기업, 금융회사들이 구조조정할 때는 명예퇴직 이름으로 적게는 1년치, 많게는 2~3년치 위로금을 얹어준다. 그런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그냥 바닥으로 추락한다. 대기업 노조에 비하면 모래알과도 같았던 자영업자들이 비 오는 광화문광장에 집결한 것은 “이대로 가면 공멸밖에 없다”는 위기감에서였을 것이다.

자영업대책은 연명치료에 불과

자영업 구조조정은 이미 예고됐는지도 모른다. 2년 전 시행된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으로 음식점과 주점 등은 1차 충격을 받았다. ‘미투운동’이 불면서 직장 내 회식 문화도 오그라들었다. 식당들은 2만9000원짜리 ‘영란메뉴’를 개발하는 등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그런데 더 무서운 파고가 덮쳤다. 2년간 27%의 최저임금 인상, 지난 7월부터 대기업(300인 이상)에 도입된 주 52시간 근로제다.

식사와 커피 한 잔으로 이어진 여유로운 점심시간은 한 시간 이내로 줄었다. 회사 구내식당이 붐비고, 사무실은 오후 5~6시에 컴퓨터 전원이 꺼진다. 칼퇴근한 직장인들은 취미와 건강생활을 찾아 백화점 문화센터와 스포츠센터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주 고객층이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자 음식점의 빈자리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동네 사장님들은 “더는 버틸 재간이 없다”며 장사를 접고 있다. 폐업이 현명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정부 지원 대책을 보면 더욱 그렇다. 종업원 1인당 일자리 안정자금을 월 2만원씩 더 올려 주고,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3%에서 1.8~2.3%로 낮추는 내용이 골자다. 편의점 근접 출점을 규제하는 방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증요법이자 연명치료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줄이고, 지역별·업종별로 차등화해 달라는 자영업자 목소리는 정책 당국자들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였다.

퇴로는 열어주고 구조조정해야

무너지는 자영업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자영업 구조조정은 언젠가 닥칠 일이었고, 그 시기만 앞당겨졌다는 분석도 일리가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란 정책 실험에 목을 매고 있는 청와대가 자영업 구조조정의 ‘엑스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촌평도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조기퇴직은 일상화됐다. 직장을 떠난 사람들이 기댄 곳은 치킨집 고깃집 빵집 맥줏집 커피숍 편의점 등이었다. 20년여 만에 600만 명(경제활동인구의 25%)을 넘어섰고 어느덧 서민경제의 근간이 됐다. 무한경쟁 속에서도 부족한 사회보장 시스템의 보완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 생계형 자영업이 지금 한계에 봉착해 있다.

문제는 자영업 시장에서 퇴출되는 순간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퇴로가 막혀 있다는 얘기다. 10%만 문을 닫아도 60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쏟아진다. 정부 당국자에게 “감당할 수 있냐”고 묻고 싶다. 우리 사회가 자영업 퇴출자를 품으려면 무엇보다 서비스산업에서 일자리가 늘어야 한다. 공공복지와 사회보장 시스템도 더 확충해야 한다. 단기 처방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틀지 않으면 자영업 구조조정은 더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진행될 것이다.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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