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슨 디섐보(25)의 우상은 타이거 우즈(43)다. 많은 ‘타이거 키즈’들이 그랫듯, 그도 우즈의 스윙을 흉내냈고, 언젠가 자신의 우상과 함께 메이저대회 필드에 서는 상상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우즈도 ‘필드의 과학자’란 별명을 가진 그를 대견하게 여겼다. “훌륭한 선수다. 나는 감각적으로 골프를 하지만 그는 경우의 수를 따지며 경기한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와 함께 플레이하면 늘 즐겁다.” 둘은 대회가 있기 전 자주 연습라운드를 하며 어울렸다. 골프황제와 그의 후계자처럼.
디섐보가 우상 앞에서 두 번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대회를 제패했다. 디섐보는 4일(한국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TPC 보스턴(파71·7219야드)에서 열린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2차전 델 테크놀로지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4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16언더파 268타를 적어낸 그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올림픽 골프 금메달리스트 저스틴 로즈(잉글랜드)를 2타 차로 제치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 노던 트러스트에 이은 2연속 우승이다.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석권한 것은 2008년 비제이 싱(피지) 이후 처음이다. 디섐보는 플레이오프 1,2차전 우승으로 상금 324만달러(약 36억원)를 챙겼다.
페덱스컵 포인트 2000점을 받아 총점을 5617점으로 끌어올린 디섐보는 2위 더스틴 존슨을 2328점차로 앞서며 1000만달러(약 110억원) 보너스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페덱스컵은 3차전까지는 포인트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이 성적으로 30위까지만 출전하는 4차전에선 포인트가 다시 리셋된다. 순위간 포인트 격차를 줄여놔 막판 뒤집기가 가능한 구조다. 이 때문에 3차전까지 1위를 해놓고도 4차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1000만달러 보너스를 마지막 대회에서 잘친 선수에게 뺏길 수도 있다.
디섐보는 ‘비주류’ 골퍼다. 본능과 감각에 의존하는 기존 골퍼들과 달리 수학과 경우의 수, 확률 등을 따지며 골프를 한다. 들판에 텐트를 쳐놓고 스윙과 장비 연구를 하기도 해 ‘필드의 과학자’란 별명을 얻었다. 대학에선 물리학을 전공했다.
3라운드를 단독 선두로 나선 디섐보는 이날 버디 6개와 보기 2개를 묶어 4언더파를 기록했다. 7번부터 9번까지 3홀 연속 버디가 추격자들의 견제를 따돌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마지막 홀에서도 2m가량의 버디 퍼트를 홀에 거의 넣을 뻔했다. 디섐보는 우승을 확정한 직후 ‘일관성’을 강조했다.
“지난주와 이번주 계속 일관성에 집중했다. 지난주부터 퍼팅 그린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고,그게 이번주에도 도움이 됐다. 내가 작은 책에 적어놓은 공략방식을 지키려고 했고 그게 잘 먹혔다.”
자신의 후계자와 3라운드에서 동반 라운드를 한 우즈는 마지막날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이븐파 71타를 쳐 공동 24위(7언더파)에 그쳤다. 11번홀까지는 좋았다. 버디만 3개를 잡아내며 10언더까지 올라갔다. 우승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14번홀(파4)에서 그동안 잘 먹히던 30야드짜리 어프로치가 2.5m나 길었다. 파퍼트가 홀을 비껴갔다. 16번홀(파3)에서는 190야드를 보고 친 아이언샷이 짧게 떨어져 해저드로 들어가고 말았다. 3온 2퍼트. 더블 보기가 터져나왔다. CBS는 “우즈는 이번주 평균적인 골프실력을 보여줬고,이날도 평범했다”고 평가했다. 좋은 골프를 보여주긴 했지만 우승에 이르기까지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진단이다.
한국 선수 중에는 안병훈(27)이 6언더파 공동 31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김시우(23)는 마지막날 2타를 내주고 5언더파 공동 35위로 미끄럼을 탔다.
김민휘(26)는 이날 2타를 덜어내며 분전했지만 5오버파 75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김민휘는 결국 페덱스컵 포인트 랭킹이 72위로 떨어져 3차전 BMW챔피언십 출전이 좌절됐다. 3차전에는 70위까지만 출전한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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