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금융위원장은 "규제혁신" 외치는데… 여전히 그림자 규제 쏟아내는 금융당국

입력 2018-09-10 17:49  

자율규제 명목…금융사 압박
DSR·통합감독·채용 모범규준 등

일각선 "근거없어 직권남용" 비판



[ 강경민 기자 ] 금융혁신을 위해 관치와 ‘그림자 규제’를 없애겠다던 금융당국이 행정지도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모범규준 등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율규제 명목의 행정지도와 모범규준이 여전해 ‘표리부동’이라는 지적이다.


◆법적 근거 없는 규제 여전

다음달 본격 도입을 앞둔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규제는 대출 신청자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 소득의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대출에 제한을 받는 제도다. DSR은 은행업법 감독규정 등에 명시된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담보인정비율(LTV)과 달리 법적 근거가 없는 단순 참고 지표다. 은행들이 DSR 비율과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대출 승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위원회도 2015년 12월 DSR을 첫 시범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단순 사후 참고 지표일 뿐 DSR 비율 때문에 대출이 거절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은행들은 조만간 금융위가 제시하는 고(高)DSR 비율이 대출을 거절하는 기준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DSR 강화를 통한 가계대출 옥죄기로 시중의 유동성을 줄이겠다는 정부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사실상 ‘공식 규제’가 될 것이라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예상이다.

지난 7월부터 시행 중인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도 법적 근거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이 모범규준은 비은행 금융그룹의 건전성을 감독하겠다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금융감독원은 모범규준을 토대로 실태 평가에 착수했다. 금융위는 국회와 협의해 통합감독법을 연내에 제정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모범규준을 앞세워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실태평가를 하는 건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연합회가 지난 6월 마련한 ‘채용절차 모범규준’도 개별 은행이 자율적으로 시행 여부를 선택하면 되지만 사실상 강제 규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수개월 만에 말 바꾼 금감원

지난해 말 그림자 규제를 없애겠다던 금감원은 아직까지 과도한 행정지도를 앞세워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즉시연금 가입자에 대한 일괄구제 방침이다. 금감원은 7월 생명보험사에 즉시연금 가입자 모두에게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하라고 밝혔다. 생보사들은 보험금 지급을 위해선 감독규정 등 근거가 필요하다고 관련 문서를 요청했지만 금감원은 거부했다. 이와 관련, 삼성생명이 법원 판결을 받겠다고 한 것도 법적 근거가 없는 무리한 행정지도를 앞세운 금감원이 자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금융당국의 이런 행태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말 열린 금융발전심의회에서 “금융당국의 행정편의적, 암묵적 규제·개입 사례를 전수조사해 정비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과 모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규제혁신을 강조한 것과도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열린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법적 근거가 없는 행정지도나 구두지도는 형법 제123조를 위반한 직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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