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슈퍼주니어 외교

입력 2018-09-10 18:59  

고두현 논설위원


주(駐)인도네시아 한국대사가 2012년 6월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청장을 만났다. 장관급인 청장은 앉자마자 “내 딸이 소녀시대 팬”이라며 휴대폰 바탕화면에 깔린 사진을 보여줬다. 3명의 부청장도 경쟁하듯 “내 딸은 슈주(슈퍼주니어의 약어) 팬” “아들이 SNSD(소녀시대 영문 이니셜) 팬” “아내가 2PM의 광팬”이라고 했다. 그해 9월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류(韓流) 월드투어에는 5만여 명이 몰렸다.

우리나라를 방문 중인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슈퍼주니어 열성 팬인 딸을 따라 K팝 콘서트에 세 번이나 갔다”고 말했다. 그는 “슈퍼주니어가 양국 국민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외교적 매개 역할을 한다”며 “슈퍼주니어 디플로머시(diplomacy·외교)”라는 표현을 썼다. 2014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딸이 슈퍼주니어와 엑소 팬이어서 공연장에 갔다”고 했다.

그의 한류 사랑을 잘 아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하루 전날 결혼한 대통령의 큰딸을 위해 샤이니 그룹 민호의 결혼 축하 영상과 엑소의 사인이 담긴 앨범을 선물했다. 이처럼 한류가 문화 영역을 넘어 외교 분야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동남아는 한류 이전에 ‘일류(日流)’를 즐겼다. 일본은 40년 전부터 동남아와 문화적 연대를 중시하는 ‘후쿠다 독트린’을 선언하고 협력을 강화해 왔다. 아베 신조 총리도 취임 후 1년 만에 아세안(ASEAN) 회원국 10곳을 모두 방문했다. 이제는 한류가 일류(日流)를 넘어선 일류(一流)로 각광 받고 있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한류 팬이다. 김치를 워낙 좋아해 김치냉장고까지 마련하고 한·일 관계가 경색됐을 때도 한국 관련 행사에 참석할 정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역시 2014년 한국 방문 때 창덕궁을 돌아보며 “대장금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미국 정상들도 한류에 매료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2년 방한 때 “두 딸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저한테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도 “딸이 밤에 손전등을 켜고 춤 연습을 할 정도로 K팝 팬”이라고 했다.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의 인기 또한 절정이다.

외국 언론들은 “한국의 K팝이 일본의 J팝을 압도하고 있다”며 “한류는 세계를 열광시키는 한국의 혁신적인 에너지를 대변하는 용어”라고 소개했다. 전 세계 한류 팬은 지난해 6000만 명을 넘어섰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의 말처럼 21세기는 ‘소프트 파워’의 시대다. 그 역사의 페이지를 ‘대단한 아이들(Super junior)’을 비롯한 한류 스타들이 장식하고 있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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