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한 방울로 피부 노화 속도와 암 걸릴 확률까지 분석"

입력 2018-09-11 18:10  

스타트업 리포트
개인유전자 분석 스타트업 - 제노플랜

7만~8만원 내면 유전자 분석
정보 바탕 맞춤형 식단 등 서비스
지난달 148억 유치…사업 '탄력'

국내 규제탓에 日에 연구소 세워
"한국은 하지말라는 것만 많아
AI 도입해 분석비용 더 낮출 것"



[ 배태웅 기자 ] “더 많은 사람이 우리 회사에 침 좀 뱉어줬으면 합니다.”

자기 회사에 침을 뱉어달라는 특이한 요구를 하는 기업인이 있다. 개인 유전자 분석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제노플랜의 강병규 대표(사진)다. 제노플랜은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분석 키트로 타액을 채취해 보내기만 하면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피부 노화 속도부터 심혈관 질환이나 암과 같은 질병에 걸릴 확률까지 다양한 검사가 가능하다. 이 정보는 맞춤형 식단, 화장품을 설계하는 데 쓰인다.

바이오 스타트업도 사회적 기업

제노플랜의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이다. 한 달 통신비(약 7만~8만원) 수준의 비용이면 누구나 유전자 분석을 받을 수 있다. 서울 강남구 제노플랜 본사에서 만난 강 대표는 “유전자 분석 비용은 건당 1억원에서 1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약국을 가듯 유전자를 분석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의 첫 창업은 지금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교육 기업이다. 그는 삼성그룹의 유전체연구센터 연구원으로 3년간 근무하다 회사를 나와 2011년 ‘알공’을 창업했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평소 신념 때문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수익을 내기 어려웠던 알공은 늘 재정난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미국 유전체 분석 기업인 ‘카운실’을 소개받으면서 제2의 창업을 결심했다.

그는 “유전병이 언제 발병할지 미리 알려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사회적 기여라고 생각했다”며 “카운실 창업자들이 사회적 기업가 출신이라는 점도 제노플랜을 설립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시작은 소박했다. 2014년 1인 기업으로 제노플랜을 창업했다. 그해 열린 창업경진대회 ‘2014 글로벌 K-스타트업’에서 최우수상과 퀄컴·구글 특별상, 요즈마그룹상 등을 휩쓸며 떠오르는 ‘스타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곧 위기가 닥쳤다. 당시 국내법상 의료인이 아닌 일반 법인이 유전자 분석을 질병 진단에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여러 법률가에게 자문한 끝에, 관련 규제가 덜한 일본에 연구소를 세운 뒤 현지에서 유전자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제노플랜은 2015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다이어트용 유전자 분석 키트를 선보이면서 국내 사업을 시작했다. 모금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목표액 1000만원을 모으며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후 기술력을 인정받아 2016년 삼성벤처투자,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5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지난달엔 GC녹십자홀딩스, 데일리파트너스 등으로부터 148억원을 추가로 투자받으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강 대표는 “규제 때문에 여러 번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성장성을 알아봐준 투자자들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규제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답답해”

개인 유전자 분석은 해외에서는 이미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벤처기업)이 등장할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다. 2012년 사모펀드 퍼미라가 16억달러(약 1조8000억원)에 인수한 앤세스트리닷컴이 대표적이다. SK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유전자 분석 시장은 2020년까지 138억달러(약 15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상황은 어떨까. 강 대표는 “한국 시장은 여전히 하지 말라는 것만 많다”고 지적했다. 2016년 정부는 ‘생명윤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체질량지수, 콜레스테롤, 혈압 등 12개 항목에 한해 일반 기업의 유전체 분석을 허용했다. 하지만 이 밖의 항목을 검사하려면 여전히 의료기관에 위탁해 검사해야 한다. 그는 “규제가 완화된 지금도 심혈관 질환, 암 발병률 분석은 일본 연구소를 통해서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규제 해소만큼이나 기업이 먼저 좋은 상품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노플랜은 현재 15개 회사와 협력해 유전자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다이어트 식단, 화장품, 맞춤형 보험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 유전자 분석만으로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제노플랜의 올해 목표는 인공지능(AI)을 유전체 분석 과정에 도입해 가격을 더 낮추는 것이다. 관련 인력도 확충해 정보기술(IT) 기업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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