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일 기자 ]
미국 중앙은행(Fed)이 이달 하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신흥국의 외환·금융위기 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풀었던 자금 회수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터키와 아르헨티나 등에선 외환위기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는 분석이다. 이들 국가는 거둔 세금보다 많은 지출로 재정적자가 쌓인 데다 무역수지 적자까지 기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재 포퓰리즘에 빠진 터키
올 들어 터키 리라화는 달러화에 대비해 42%가량 하락했다. 터키는 최악의 외환위기를 맞은 아르헨티나와 함께 신흥국 위기의 진앙지로 지목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무모한 외교·경제정책이 주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터키 리라화 가치의 하락세는 지난달부터 급격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억류 중인 미국인 목사를 석방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요구를 일축하자 미국이 터키에 보복성 무역관세를 매긴 뒤다. 에르도안은 미국이 자국 내 소수민족 쿠르드족을 지원한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연초부터 환율이 뛴 것도 에르도안 대통령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장기 독재를 노리는 그는 작년 말부터 “금리를 올리면 국민 생활이 어려워지고 오히려 외화가 유출된다”며 금리 인상을 막았다. 외화가 빠져나가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인식에 대한 우려로 외국 자본이 줄줄이 이탈해 환율이 급등한 뒤에야 터키는 기준금리를 소폭 인상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에 달러가 있다면 우리에겐 알라(신)가 있다”며 미국과의 갈등을 확대하고 있다. 이번 위기가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높아진 배경이다.
미국이 금리 올리면 신흥국 위기
글로벌 주식·채권 등 선진국 투자금이 연쇄적으로 신흥국에서 이탈하면서 위기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올 들어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21%,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가치는 19%가량 떨어졌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역시 약 9% 하락했다.
신흥국 환율 대란을 일으킨 1차 원인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다. 미국 기준금리가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이유는 최강대국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무역의 40%는 달러화로 이뤄지고, 신흥국 외화 부채 가운데 달러화 채권 비중은 3분의 2에 달한다. 미국이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 달러가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국제 금융시장, 특히 신흥국의 달러 통화량이 줄어 세계적인 달러화 강세로 이어진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등이 주도한 저금리 기조에 혹한 신흥국이 빚을 늘린 것도 위기 요인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 외화표시 부채(금융부문 제외) 규모는 2013년 말 4조9000억달러에서 지난 1분기 사상 최대인 5조5000억달러(약 6180조원)로 늘었다. 외국에서 돈을 빌릴 땐 주로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한다. 채권 발행은 차용증을 주고 돈을 빌리는 것과 비슷하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갚을 돈이 많아지게 된다. 단기간에 갚아야 할 외채 비중이 높으면 글로벌 금융시장이 조금만 나빠져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무분별한 재정지출, 환율에 악영향
신흥국 외환위기의 또 다른 공통 원인은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다. 만성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아르헨티나와 터키는 매년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있다. 수입이 수출보다 많아 외화가 유출되고 있다. 돈이 부족한 정부는 외국에서 달러화를 빌리거나 무리하게 자국 화폐를 발행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화폐를 마음대로 찍어내면 물가와 환율 폭등으로 이어진다.
위기에 빠진 신흥국 정부는 복지 등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게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수출 산업을 육성하고 경상수지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러나 신흥국들은 국민 저항으로 재정 지출을 줄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6월 정년을 연장하고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개혁안을 내놨지만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 NIE 포인트
신흥국이 외환위기에 빠진 이유를 정리해 보자. 잘못된 경제·외교 정책이 초래한 환율 위기가 경제와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자. 정부가 복지 확대 등으로 과도하게 재정 지출을 늘리면 경제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지 토론해 보자.
이현일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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