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봉호 오가던 일본 니가타항, 인기척 사라진 조총련 본부

입력 2018-09-18 08:26   수정 2018-09-18 08:36


북한과 불과 800km 떨어진 일본 니가타현(新潟?). ‘관계자 출입금지’라 적힌 표지판을 지나 항구 안쪽으로 들어서자 뱃고동을 울리며 접근하는 유람선이 보였다. 불과 12년 전까지 북한의 원산에서 출발한 만경봉호가 입항했던 곳이다. 냉전시대에도 북·일 간 창구 역할을 한 니가타현 곳곳에는 2006년까지 진행된 북한과의 교류 흔적이 남아있었다. 항구 안쪽에는 지금은 굳게 문이 닫힌 조총련 니가타 지부다. 주민들도 만경봉호의 입항을 기억했다.

니가타 태생으로 ‘일본해창고(日本海倉庫)’에서 일하는 와타나베 가쓰히로(渡?勝弘)씨를 항구 근처에서 만났다. 그는 “만경봉호가 일본에 온 것은 오래전 일”이라며 “북한과 다시 교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본에는 12년 가까이 북한 선박이 입항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도발과 이를 막기 위한 6자회담이 한창이던 2006년에 일본인 납치문제가 불거진 탓이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김정일과 단독 회담을 가지면서 납치 문제에 대한 ‘사과’를 받아냈지만 일본엔 오히려 반북한 여론이 들끓었다.


세계 2차 대전 후 일본 내 조총련계는 재일조선인을 북한에 귀환시키는 ‘북송 사업’을 진행했다. 1959년 12월 14일 975명의 귀환자를 ‘쿠리리온호‘에 태워 북한 나진항으로 보낸 제 1회 귀환을 시작으로 1960년대엔 한 주에 100여명 이상을 귀환시켰다. 니가타 현에 따르면 1967년 155차 공식 귀한을 마지막으로 총 2만8049세대, 9만3339명을 북에 보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는 재일교포의 북송을 기념하기 위해 니가타 서항에 버드나무를 심고 이 길을 ‘보토나무 토오리(버드나무 길)’라고 명명했다. 이 버드나무 길에서 200보 정도 걸으면 붉은 색의 4층 짜리 조총련 건물이 보인다. 북한 경제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조총련 세력이 크게 약화된 탓에 방치된 채 인기척이 없었다.


니가타 공항 근처에는 조선인학교가 있었다. 빛 바랜 놀이터와 녹슨 그네가 조총련의 재정 상태를 말해줬다. 조선인학교 출신인 오수정(25) 조총련 니가타 본부 지도원은 “일본인 납치문제가 심각해진 2005년에는 일본 우익들이 조총련 본부에 총질을 하기도 했다. 불안해진 학부모들이 대부분 일본인 학교로 진학시켰다”며 “현재 주 2회 우리말 수업을 하고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재작년 조총련은 학교 운동장을 팔았다.

니가타는 북한과 교류가 활발했던 탓에 ‘납치 피해 문제’가 가장 격렬한 곳이다. 일본 납치 피해자 12명 중 3명이 니가타 출신으로 알려졌다. 납치 피해자를 돕는 ‘구하자 모임(스쿠우 카이)’은 작년 8월 이 곳에서 납치 문제 집회를 열었다. 협회 관계자는 “올 11월에도 집회를 열 예정”이라며 “납치 문제 해결 없이 북한과의 교류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북한과 일본인의 간극은 지도상 거리보다 멀었다.

니가타=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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