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을 위한 몇가지 苦言

입력 2018-09-19 17:31  

쇄신인사·지배구조 개편 난제 우선 풀고
글로벌 생산체제 전략 수정 고민해야

장창민 산업부 차장



[ 장창민 기자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당시 현대차 부회장)과 올초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 행사장에서다. 그는 대뜸 기자에게 다가와 “오늘 행사를 어떻게 봤냐”고 물었다. 외부에 비친 현대차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해했다. 인상적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묻고, 잘 듣는 자세와 능력을 갖춘 듯 보였다. (오너 기업인 중 이런 능력을 두루 갖춘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정 부회장에게 ‘힘’이 더 실리면, 현대차가 더 좋아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9개월 뒤 정 부회장에게 정말 ‘힘’이 실렸다. 지난 14일 그룹 총괄수석부회장에 올라 그룹 전략과 투자, 인사를 책임지면서 56개 계열사를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앞으로 현대차그룹이 단박에 달라질 수 있을까. 정 부회장이 켜켜이 쌓인 난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우선 대대적 인적 쇄신이 필요할 듯 싶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물론 인사는 늘 괴롭다. 누군가 칼을 쥐고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다. 수년간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경위도 따져봐야 한다.

큰 ‘숙제’ 중 하나인 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서두르면 안 된다. 정부 눈치를 보며 쫓기듯 그림을 그렸다간 괜스레 ‘스텝’만 꼬일 뿐이다. 정부가 아닌, 시장이 원하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천천히 고민해 내놔야 한다. 그래도 늦지 않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부터 국내 증권사의 말단 애널리스트 의견까지 다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생산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전략 수정도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생산능력은 10년 전인 2007년만 해도 연 500만 대에 미치지 못했다. 2008년부터 생산능력을 무섭게 키우면서 지금은 연간 908만 대에 달한다. 그런데 올해 글로벌 판매량은 750만 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150만 대 이상의 ‘생산능력 과잉’을 해소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중국과 국내 공장 생산라인을 어느 정도 조정하는 게 불가피할 전망이다.

매번 발목을 잡아온 현대·기아차 노동조합과 담판도 지어야 한다. 그동안 800만 대 판매 고지에 오르기 위해 노조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컨베이어벨트가 비어 있는 채로 돌아가는 울산공장의 ‘공피치’를 마냥 두고볼 순 없는 일이다. 국내 공장의 생산성을 더 높이거나, 근로자 임금을 줄여야만 지속 가능한 생존이 가능하다.

자율주행 및 커넥티드카 등 미래 자동차 시장에선 최대한 빨리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뒤처지면 죽는다.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절실하다. 2015년부터 중국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붐이 일었지만, 현지에서 통할 만한 모델을 제때 내놓지 못해 쓴맛을 본 경험을 잊어선 안 된다.

협력사들의 경영 현황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수많은 자동차 부품사가 줄도산 위기에 놓여 있다. 무턱대고 도와줄 순 없는 노릇이지만, 이들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는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이다. 미국의 ‘관세 폭탄’도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정 부회장이 아니라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이긴 하다.)

기자가 건넨 고언(苦言) 대부분은, 정 부회장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단순히 아는 것과 활자화된 고언을 눈으로 보고 되새기는 것은 다르다고 믿는다. 정 부회장의 ‘건투(健鬪)’를 빈다.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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