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재판, 권력 그리고 도덕성

입력 2018-09-19 17:32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은 '위험'
善意 내세워 나쁜 수단 정당화하게 될 뿐
판사도 '법 권위' 독점했다 착각 말아야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미국 정치학자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에 따르면 정치권력의 핵심적 관심은 권력 취득과 유지에 있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도덕성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제도를 갖추면 권력이 그 취득과 유지를 위해 공익에 보다 더 봉사하고 국민의 복지에 기여하려는 동기를 가지게 된다.

교회가 정치권력까지 장악한 시대가 있었다. 당시 교회는 도덕성을 독점했고, 교황에게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교의가 지배했다. 정치권력이 도덕성까지 장악하면 브레이크가 없다. 그 결과 종교재판이나 사상 통제와 같이 비록 선의로 시작했더라도 처참한 결과를 낳은 정책이 시행됐다. 고문과 화형, 마녀사냥, 비인간적 해외 식민지에 대한 지지는 도덕성을 독점한 권력이 결과적으로 도덕성을 상실하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후에도 크롬웰, 로베스피에르 등 도덕적 우월성을 자부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잔혹한 행적을 남긴 사례는 대단히 많다. 자신을 도덕적으로 우월한 집단, 상대방을 부도덕한 악의 집단으로 규정하게 되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 선택에서 자제가 줄어들며 훨씬 잔혹하고 과격한 대처를 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정부는 9·11 공격을 겪은 후 테러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에 대해 법원 영장 없이, 가족에게 통보도 하지 않은 채 체포 구금한 적이 있다. 무기한 구속 상태에서 잠을 재우지 않거나 의지력을 약화시키는 약물을 강제로 주사하고 심지어 직접적인 고문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강제 수사를 했다.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한 이상(소위 ‘테러와의 전쟁’) 이는 적 전투요원에 대한 대응일 뿐 형사 절차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악의 축에 대항하는 미국의 도덕적 우월성에 더해 피해자로서 복수의 공의로움에 대한 확신을 가진 많은 미국 시민들은 이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침내 미국의 사법부가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공산주의 역시 자본주의에 대해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과 역사적 진보성을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확신 위에서 공산주의를 위협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자들은 실제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방 또는 교육 차원에서 인민으로부터 격리하고(즉 구속, 감금)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해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등 적당한 조치를 한다. 과거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무수히 일어났던 일이고, 중국에서도 문화혁명 때 수많은 사람이 단지 지식인이라거나 고위관료라거나 잘살았다는 이유만으로 하방(下放)당해 탄광이나 벌목장이나 돼지농장에서 기한 없이 가혹한 강제노동에 내몰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사상이나 이념이 고결한 것이라고 지나치게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나아가 그 이념의 구현을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나 절차가 다소 부적절하거나 편법적이라도 좋은 결과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하다.

종교인이 종교의 권위와 도덕성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기 쉽듯 판사도 법의 권위와 도덕성을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판사가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잘못된 독선을 내보인다면 재판받는 사건 당사자가 느낄 절망과 무력감은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패소한 사람은 자신의 인격적 가치를 부정당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법정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데 그중에는 남편의 일 때문에 가슴 졸이며 법정에 들어온 탁월한 문인도 있을 수 있고,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섰다가 낭패를 당한 뛰어난 예술가도 있을 수 있으며,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많은 세금을 냈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에 실패한 사업가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식으로부터 존경받고 배우자로부터 사랑받는 많은 훌륭한 이웃들이 있을 것이다.

잘못된 독선을 가지지 말자고 늘 스스로를 경책하며, 패소한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재판은 사건에 대한 것이며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재판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한 가치 평가가 아니다. 문제가 된 사건에 대해 합의된 절차에 따라 법을 적용한 결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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