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그림자 금융의 주범" 규제
통상전쟁 여파 주가 급락에 '백기'
예금·채권에만 묶여 있던 WMP
자금 상당부분 증시 유입 기대
[ 강동균 기자 ] 중국 금융당국이 은행에서 판매하는 자산관리상품(WMP)을 통한 주식 투자를 허용하기로 했다. WMP는 고금리를 내걸고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은 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회사채 등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그 규모가 22조3200억위안(약 3600조원)에 달한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이 자금 차입 통로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 중국 그림자금융(비은행 금융회사의 자금 중개) 확대의 주범으로 꼽혀왔다. 중국 정부는 그림자금융 팽창이 금융시스템 위험을 가중시킨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부터 WMP 규제를 강화해왔다. 하지만 미·중 통상전쟁 격화로 상하이증시가 올해 들어 고점 대비 20% 이상 폭락하자 기존 정책을 뒤집고 주가 부양을 위해 초강수를 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중국 경제전문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중국 은행보험관리감독위원회는 은행이 판매하는 WMP가 주식 관련 뮤추얼펀드(간접투자상품)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새로운 감독관리 규정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큰손’ 투자자를 위한 사모형 WMP만 주식에 투자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일반 공모형 WMP도 주식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또 공모형 WMP 가입 최소 기준도 기존 5만위안(약 808만원)에서 1만위안(약 161만원)으로 낮췄다.
중국에서 2002년 처음 선보인 WMP는 은행들이 신탁회사나 증권사, 자산운용사와 협력해 개발한 상품이다. 대부분 원금을 보장해주지 않지만 은행들은 예금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며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금융정보업체 윈드인포에 따르면 WMP의 연평균 약정 수익률은 5% 안팎에 이른다. 중국의 예금 금리가 연 1.5%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세 배가량 높다. 올해 8월 말 기준 원금 비보장형 WMP 잔액은 22조3200억위안에 달한다.
하지만 이윤이 높은 만큼 위험도 크다. 은행들은 WMP 판매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에 고금리로 대출해왔다. 은행 대차대조표에서 WMP는 부채가 아니라 상품으로 분류된다. 그러다 보니 은행은 대출 이자를 챙기면서 부담 없이 투자자들에게 팔아왔다.
WMP는 자금 흐름이 불투명한데도 당국의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아 중국 그림자금융의 전형으로 꼽히고 있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그림자금융 확대가 중국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최대 뇌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WMP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규제를 강화해왔다. 은행의 거시건전성 평가지표에 WMP를 포함하고 충당금을 일정 비율 쌓도록 의무화했다. 수익률 보장 관행을 금지하고 반드시 제3의 신뢰할 수 있는 수탁기관을 설정하도록 했다. 중국 정부가 WMP 규제를 풀고 나선 것은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선 주식시장을 살리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차이신은 분석했다. 중국 증시 벤치마크인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28일 2821.35로 마감해 올 1월 고점(3587.03) 대비 21.3% 폭락했다. 올해 3분기까지 상하이증시는 분기 기준으로 네 분기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상하이증시가 네 분기 연속 떨어진 것은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선전증시도 6개월 연속 하락세다.
중국 자본시장에선 예금과 채권에 묶여 있던 WMP 자금 중 상당액이 주식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영 중국신문은 “22조위안의 거대한 WMP 시장이 큰 변화를 맞게 됐다”며 “주식 투자 허용은 투자자들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좋은 소식”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미·중 통상전쟁으로 곤두박질친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중국에서 일하는 외국인과 중국 상장 기업의 해외 법인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도 상하이증시와 선전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주식(A주)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동안 A주에는 내국인과 일부 해외 투자자만 투자할 수 있었다. 또 올해 안에 상하이거래소와 영국 런던거래소 간 주식 교차 거래(후룬퉁)를 시행하기로 확정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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