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대출에… 재건축·재개발 '이주 비상'

입력 2018-10-01 18:21   수정 2018-10-04 17:36

'9·13 대책' 이주비 대출 규제

방배 5구역 조합원 일부 "대출 막혀 이주 못해"
한신 4지구 조합원 일부 "사업 3년 늦추자"

'1+1 재건축' 포함 문정동 조합
다주택으로 대출 불가 가능성



[ 선한결 기자 ]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을 옥죄면서 이주를 앞둔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들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서울 집값이 급등해 인근에 옮겨갈 집을 구하기 어려운 데다 다주택자 등 일부 조합원은 이주비 대출과 전세자금대출 등이 막혀서다. 이주비 때문에 사업을 미루자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재건축 철거·착공 직전 단계인 이주 과정에 잡음이 속출하면서 가뜩이나 공급이 부족한 서울지역 주택난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업장마다 ‘이주비 비상’

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초구 방배5구역(사진)에선 “이주 기간 안에 이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주민 모임이 최근 생겼다. 이 구역은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등을 통해 추가 이주비 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금융당국이 개입해 계획이 무산된 곳이다. 잠원동 한신4지구는 서울시가 정한 이주 가능 시점을 두어 달 앞두고 조합원 사이에서 사업을 3년 이상 늦추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가구가 ‘1+1 재건축’ 대상인 송파구 문정동136 재건축 조합엔 이주 계획 차질을 우려해 관련 문의를 하는 이들이 쇄도하고 있다.

각 구역 조합원이 사업 연기 등을 주장하는 것은 최근 연이은 정부 대책으로 이주비를 마련할 길이 막혀서다. 이주비 대출은 재건축·재개발구역 철거가 시작될 때 소유자들이 대체 거주지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집단대출이다. 작년 ‘8·2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지역 내 정비사업의 이주비 지급 한도가 기존 LTV 60%에서 40%로 대폭 줄었다.

지난달 나온 ‘9·13 주택시장 안정 대책’은 이주비 대출도 주택구입 목적 대출로 간주하고 다주택 여부 등에 따라 대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9월14일 이후엔 1주택자에게만 이주비 대출을 해주는 것이 원칙이다. 지난달 13일까지 조합이 이주비 대출 은행을 선정해 통보한 경우엔 종전 규정을 적용받는다.

대출이 막히면서 인근으로 옮겨갈 집을 구하기 어려워진 사람이 늘었다. 통상 이주비 대출을 받아 처리하는 세입자 전세금 상환과 기존 대출 상환도 문제다. 방배5구역 인근 A공인 관계자는 “기존 규정에 따라 종전 감정평가액의 40% 수준만큼 이주비 대출을 신청할 경우 받는 돈은 시세의 25% 정도에 불과해 인근 전세를 구하기 힘들다”며 “그나마도 2주택자부턴 대출이 어려워져 이주나 청산을 고민하느니 아예 주저앉는 이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순위고금리대출 의존해야 할 수도”

기존 정비사업지에서 이주비 대출 보완 역할을 해온 전세자금대출 등도 효력이 크게 줄었다. 정부는 9·13 대책에서 고소득·다주택 가구에 대해 전세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부합산 연소득 7000만원 이상, 1자녀 가구 연소득 8000만원, 2자녀 가구 연소득 9000만원 등이 고소득 기준에 해당한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카페 대표(필명 붇옹산)는 “기존 정비사업장에선 이주비 대출로 부족한 부분은 전세자금대출 등으로 보완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왔는데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며 “대출이 필요한 이들이 후순위고금리대출 등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지 지분이 높은 기존 주택 하나를 소형 새 아파트 두 채로 받는 1+1 재건축의 경우 문제가 매우 까다로워졌다. 관리처분인가 이후 입주권을 두 개 받기 때문이다. 9·13 대책에 따르면 입주권도 주택으로 인정돼 곧바로 다주택자가 되는 셈이다. 이 경우 규정 해석에 따라 이주비 대출을 아예 못 받을 수도 있다. 문정동136 조합원인 김모씨는 “국토부에 문의했으나 아직 해석받지 못했다”며 “최악의 경우엔 전세금 상환 부담 등에 밀려 현금 청산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요즘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이주비 조달을 앞둔 조합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추가 이주비 대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이주 시기가 늦어지면 금융비용과 공사비 등 사업비가 늘어날 공산이 커서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일부 건설사는 부채가 상당하고 연내 금리 인상이 예상된 터라 자체 보증을 통한 이주비 대출 알선 등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덩치 큰 단지에선 조합원들이 제때 이주를 마치지 못해 새 주택 공급이 연기되는 사례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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