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한반도는 지금)[북방 접경지대를 가다]⑤훈춘 독립투사 후예들이 일본기업 변호사로 고용되는 까닭

입력 2018-10-03 16:19  



(박동휘 정치부 기자) 북·중 접경도시 훈춘을 다시 찾은 건 꼭 10년 만이었다. 포스코 물류단지가 들어설 무렵이던 2008년께 겨울, 훈춘은 말 그대로 동토(凍土)였다. 두꺼운 패딩과 온갖 털 용품을 동원해도 훈춘의 칼바람을 막는 건 쉽지 않았다. 100여 년전, 조선의 유민들은 얼어붙은 땅을 개척해 삶의 터전을 일궜다. 하지만 그 후예들은 조상의 땅을 버리고 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은 갈 길이 바빴고, 조선족들이 흩어져 살던 동북3성은 개발의 대상에서 소외됐다. 이에 비해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 속에서도 꿋꿋하게 발전을 거듭했다.

강산도 바꾼다는 10년 세월은 훈춘에도 봄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8월 방문한 훈춘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포스코 물류단지가 들어설 무렵만해도 변방의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은 인구 25만명의 도시로 성장했다. 중국 정부는 훈춘 인구를 5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인프라’부터 먼저 까는 중국 특유의 개발 계획은 이곳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무역센터가 들어섰고, 최고급 호텔도 완공했다. 상·하수도 시설이 연결돼야 해서 아직은 이용할 수 없었지만 2~3년 뒤 바뀔 훈춘의 모습이 상상이 갔다. 중국 정부는 훈춘에 민간공항을 건설하는 방안도 승인했다. 베이징에서 10시간 가량이면 닿는 훈춘의 고속철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놓일 것이라는 게 훈춘에서 만난 국제버스터미널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올해 착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0여 년 전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조국’을 찾아갔던 한국의 조선족들은 이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밝힌데다 북·중 무역이 재개될 조짐이 보이면서 일자리도 늘고 있다. 공장 근로자의 최저임금은 거의 10배 가까이 뛰었다. 조선족인 훈춘시 관계자 조씨는 “한국 사람들은 조선족을 하류 노동자 취급한다”며 “한국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을 보고 중국 조선동포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조씨는 중국 공안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그의 마음에서 ‘조국’으로서의 한국은 이미 멀어져가고 있었다.

훈춘을 비롯해 동북3성에 있는 조선족는 티벳자치구에 있는 ‘중국인’들과 함께 중국 정부가 가장 신경을 쓰는 소수민족이다. 티벳인들은 망명정부를 세운 달라이라마를 따른다. 조선족 역시 한반도에 그들의 조국이 건재하다. 티벳자치구는 중국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동화 정책을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반발이 워낙 거세 유혈진압사태가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북방 접경지대의 전초기지인 동북3성에서 티벳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훈춘에서 만난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책을 하나 중국에 들여올려고 해도 온갖 검열을 거쳐야한다”고 했다. 조선족 기업들의 기부활동조차 감시의 대상이다.

하지만 조선족이 티벳자치구의 길을 걸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만주의 조선인들은 1946년 국공내전이 발발하자 고국으로의 귀향을 마다하고 기꺼이 중국 공산당을 도왔다. 도울 김용옥 선생은 그의 연변대 생활을 담은 ‘일기’에서 “조선인들은 자발적 투쟁을 통해 연변자치주 성립의 정당한 도덕성을 확보했다”고 썼다. 중국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이었던 주더는 1964년 7월 연변대를 방문해 사회주의 정통을 조선인들이 계승할 자격이 있음을 분명히했다. 최근엔 중국 정부가 동북3성 개발의지를 밝히면서 조선족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김일성대학, 김책공대 등 북한의 학술분야를 대표하는 거물들은 연변대를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훈춘에 있는 북·중 합작공장의 대부분이 조선족 회사다.

훈춘에서 북한 온성군은 얕은 구릉 하나만 넘으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온성군 일대에선 휴대폰만 구하면 탈북한 친척들과도 통화가 가능하다. 인터넷도 검색할 수 있다고 한다. 유심칩은 훈춘의 조선족들이 구해준다. 요즘엔 유화 팔이가 한창이다. 보통 한 점당 500위안 정도에 팔리는데 호구를 구하면 2000~3000위안에도 팔 수 있다. 10여 년 전엔 온성군에서 영양실조로 아이가 다 죽어간다며 손을 벌리는 북한 주민들도 많았다. 훈춘의 조선족들은 아름아름 돈을 모아 100달러를 건네곤 했다. 온성군 옆에는 온탄이라 불리는 탄광촌도 있다. 정치범 수용소다.

중국이 지난 8월 약 2700여t의 정제유를 북한에 제공했다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7월 반입량의 3배에 달한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12월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서 북한에 제공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정제유 양을 연간 50만 배럴(약 6만∼6만5000t)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미국의소리방송(VOA)는 “유엔에 보고된 (대북) 정제유 반입량은 공식적인 수출만을 집계해 실제 유입량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한계가 있다”며 "특히 최근 관련국들이 공해상에서 포착한 선박 간 환적을 통한 (북한의) 유류 거래는 이번 자료에 포함되지 않아 실제 북한에 유입된 정제유는 2만여t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에 평화가 진전될수록 중국의 조선동포들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일본이 조선족 수재들을 변호사로 대거 영입하고 있는 것만봐도 미래를 짐작해볼 수 있다. 독립투사들을 길러낸 연변대가 가장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제1외국어는 일본어다. 우리는 과연 준비가 되어 있나. 동북3성의 조선동포들은 조국의 관심과 지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끝) / donghuip@hankyung.com/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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