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내는 ELS 하반기 잇단 취소
지표 홍콩H지수 변동성 커진 탓
2~3년 전 대규모 손실 트라우마
'녹인 43~50%' 안정적 상품 대세
"年 5% 목표수익은 아쉬워" 지적
[ 송종현 기자 ] 20년차 직장인 A씨(46)는 15년 이상 개별 주식은 쳐다보지 않고 주가연계증권(ELS)에만 목돈을 넣어 금융자산을 크게 불렸다. 그는 최근 공모청약에 나온 NH투자증권의 녹인 배리어(손실가능 구간) 55%짜리 지수형 상품(가입기간 기초자산이 55% 미만으로 한 번도 내려가지 않으면 목표수익을 주는 상품)에 청약했지만 가입할 수 없었다. 이 상품이 증권사가 제시한 ‘청약액이 10억원 미만이면 발행이 취소될 수 있다’는 조건에 걸려 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상품 청약액은 2억500만원에 그쳤다. 증권사들은 ELS 운용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감안해 청약 참여 금액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만 해당 ELS를 발행한다.
A씨는 “목표수익률 연 7.4%짜리였는데, 요즘 나오는 지수 ELS 중 연 7% 넘는 수익을 주는 게 거의 없어 매력적인 상품이었다”며 “최근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기초자산으로 쓰이는 홍콩H지수의 변동성이 커져 녹인 배리어 55%짜리 상품 중에서 발행이 취소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몸 사리는 ELS 투자자들
하반기 들어 각 증권사의 지수 ELS 청약 결과를 살펴보면 투자자들의 ‘몸 사리기’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NH투자증권이 하반기 들어 공모청약 시장에 선보인 녹인 배리어 55%형 ELS 24개 가운데 19개가 발행에 실패했다. 발행에 성공한 5개 ELS(상품별 모집한도 100억원)의 평균 청약액은 5억6820만원에 그쳤다. 반면 목표수익률을 낮추고 안정성을 키운 녹인 배리어 43~50%짜리는 56개가 나와 이 중 41개가 발행됐다. 여기에는 평균 18억8397만원의 자금이 몰렸다.
한국투자증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반기에 나온 녹인 배리어 55%짜리 지수형 상품 53개 중 11개의 발행이 취소됐다. 녹인 배리어 45~50% 상품은 58개가 나와 이 중 7개만 발행되지 않았다.
강우신 기업은행 한남WM센터장은 “ELS 투자자들은 ‘수익을 조금 내더라도 원금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데 최근 기초자산인 홍콩H지수 변동성이 커지자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졌다”며 “2015~2016년 대규모 손실 사태를 경험한 투자자 중 상당수는 녹인 배리어 55%짜리는 절대 투자하지 않겠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안정성 강화 상품 인기
시장이 이렇게 바뀌자 각 증권사는 안정성을 강화한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기존 녹인 배리어 조건에 3년 투자기간 중 6개월~2년6개월 구간에 기초자산 가격이 65~80%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조기상환하는 조건을 추가한 ‘리저드(도마뱀)’ 상품이 대표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올 들어 9월 말까지 90개 리저드 ELS를 내놔 상품당 평균 9억7386만원을 끌어모았다. 작년엔 총 57개가 나와 개당 10억725만원이 청약됐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이런 추세면 올해 발행 실적과 상품별 평균 청약액 모두 작년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초자산에 해외주식을 담은 뒤 만기 때 손실이 확정되면 해당 주식을 지급하는 ‘해외주식 지급형 ELS’도 있다. 우량 해외주식은 장기간 보유하면 언젠가 원금이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착안한 상품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이런 유형의 ELS를 지난 3월 처음 내놨다. 기초자산 중 하나가 해외주식인 ‘글로벌 ELS’ 발행금액 중 이 ELS가 차지하는 비중은 3월 46.18%에서 9월 86.94%로 크게 늘었다.
일각에선 “연 5% 안팎에 머물고 있는 ELS 투자자들의 목표수익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ELS도 손실위험이 있는 투자상품인데 연 5% 목표치는 손실을 감수하기엔 너무 낮다는 것이다. 박상현 리딩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충격이 오지 않는다면 홍콩H지수가 지금보다 55%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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