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철 기자 ] 20세기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정책은 두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와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이다. 1929년 미국 대공황 이후 1960년대까지 세계 경제학계는 케인스 학파의 시대였다. 케인스는 불황을 극복하고 완전고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비와 투자, 즉 유효 수요를 확대하기 위한 정부 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자유주의 학파로 불리는 시카고 학파의 거두(巨頭) 프리드먼은 자유시장을 지지하며 정부 역할이 최소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격 통제, 규제 등 정부의 시장 개입 부작용이 크게 부각된 1970년대 이후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시카고 학파가 주목받았다.
약자를 위기로 내모는 '선한 정책'
미제스에서 하이에크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자유주의 전통을 계승한 프리드먼의 사상은 영국과 미국의 경제를 부흥시킨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복지정책 구조조정, 공공지출 삭감, 세금 감면,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이 두 정책의 공통점이다.
프리드먼이 1982년 출간한 《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는 그가 1966년부터 1982년까지 16년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연재한 칼럼 등을 엮은 책이다. 정부 역할, 가격 통제, 사회보장제도, 조세정책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자유시장경제 수호자인 프리드먼의 사상을 쉽고 명료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리드먼은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정부가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제한돼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시장경제의 가장 큰 장점은 국부(國富)의 원천인 기업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가장 낮은 비용으로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는 비결이다.”
그는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당시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정부는 선(善)하고 착한 의도로 시장에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착한 정부’는 ‘큰 정부’를 자처하기 십상이다. 소기업 등 이른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장에 규제를 가한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가격을 통제하고 복지정책을 무더기로 내놓는다. 그러나 약자들을 위한다는 정부의 ‘화려한 약속’은 좋은 의도와는 달리 ‘우울한 성과’만을 낳을 뿐이다. 약자들을 더욱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최저임금 인상이 약자들의 해고로 이어지는 게 대표적이다.”
프리드먼은 정부 개입주의로 인한 반(反)시장 정책과 복지정책들이 가져올 폐해를 지적했다. “정부가 시장 효율을 무시하고 정의, 평등, 도덕 등 가치에 매몰되면 인기영합주의에 휩쓸리기 쉽다. 하지만 착한 정부가 다스리는 착한 국가에서도 복지 수혜자들은 행복해지기 어렵다. 이들은 자신의 ‘수혜 자격’이 정당하며 아직도 더 많은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가난이 ‘청구(請求) 권력’이 되는 사회, 국가에 대한 의존이 당연시되는 사회에 창의력과 활력이 생길 리 없다.”
프리드먼은 정부 역할과 지출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경제정책이라고 역설했다. “모두가 더 새롭고, 더 크고, 더 후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부는 누군가의 희생(세금 부담) 없이는 돈을 지출할 수 없다. 개인이 잘 살고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유시장경제와 작은 정부가 필수적이다. 미국 연방정부에 사하라 사막의 관리를 맡겨 보라. 5년 안에 모래가 부족해질 것이다. 선의를 가진 착한 정부도 일부 기업이 시장을 과점하는 ‘나쁜 시장’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나쁜 시장에도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조절 기능과 기업 간 경쟁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경기부양책은 규제완화"
프리드먼은 재정 투입보다는 규제 완화가 경기 부양에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를 살리려면 규제를 과감히 없애고 기업 투자 여건을 향상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중요하다. 대다수 정부는 조급함에 빠져 재정 투입으로 일자리를 늘리려 한다. 시장의 효율성과 복원력을 믿지 못해 섣부르게 시장에 개입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샤워실의 바보(온수를 틀었다가 뜨거우면 냉수를 틀고, 차다고 다시 온수를 트는 등 오락가락 행보)’가 되는 길이다.”
프리드먼은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진다’는 사회주의 구호의 허구성도 지적했다. “마르크스와 레닌 추종자들은 민중을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사회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번영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상황이 어땠는지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하다는 비판도 잘못된 것이다. 문학, 예술, 건축,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모두 개인 성취의 산물이었다. 개인의 자유로운 영업 활동과 창작이 보장됐던 르네상스가 인류 문화 발전을 이끈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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