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현 기자 ] 40대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독일어 공부를 하고 싶구나.” 병세가 깊어졌을 때는 아들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어달라고 했다. 아들은 “어머니는 남은 시간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늘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마음,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는 의욕은 그 자체로 아들에게 가르침이 됐다.
아들은 쉰이 되던 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열 명 중 두 명은 죽게 된다”는 수술 이후 재활에 몰두했다. 예순에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2년 후 한글을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게 됐다. 국내에서 150만 부 넘게 팔린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의 이야기다. 철학자인 그는 신간 《마흔에게》에서 “평가와 평판에 개의치 않고 순수하게 배우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나이듦의 특권’으로 꼽는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주어진 남은 생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저자는 “많은 일을 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와도 할 수 있는 일은 남아 있다”며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나가는 것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힘이 된다. 생은 ‘끝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이 아니라 순간순간이 즐거운 춤’이라는 저자의 비유는 누구나 갖고 있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다산초당, 1만4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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