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경제 조교수 3년 재직 등
민간위원 자격 요건 신설키로
근로자 대표 대부분 '자격 미달'
시민단체 "대표성 훼손" 반발
[ 김일규/유창재 기자 ]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 자격을 신설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기존 민간위원을 전원 물갈이하기로 했다. 기금 고갈 시기가 2057년으로 종전 예상보다 3년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 가운데 올 들어 운용 수익률이 1%대로 주저앉는 등 기금의 안정성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둘러싼 비판이 비등한 데 따른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그동안 소속 임직원을 기금운용위원 자리에 앉혀온 단체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기금운용위의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걸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기금 운용과 관련, 자신들의 입김을 불어넣기 힘들어질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금운용위원 자격 신설
보건복지부는 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회의에서 민간위원의 자격 요건을 신설하는 등 내용의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 초안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의견 수렴 뒤 다음달 입법예고를 거쳐 이르면 내년 5월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기금운용위는 643조원(7월 말 기준) 규모의 국민연금 적립금 운용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이며, 관계부처 차관 등으로 구성된 당연직 위원 5명과 근로자(3명), 사용자(3명), 지역가입자(6명) 등을 대표한 위촉직 민간위원 14명으로 이뤄져 있다.
복지부는 민간위원의 자격 요건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 경제, 자산운용, 법률, 사회복지 등 분야에서 대학 조교수 이상 3년 이상 재직 경력 등이 있어야 민간위원이 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 경우 기존 민간위원 대부분은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해 교체돼야 할 것이라는 게 복지부 설명이다. 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근로자 대표단체는 물론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사용자 대표단체도 그동안 자격 요건과 상관없이 소속 임직원을 기금운용위원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모든 추천단체에 기존 위원의 남은 임기에 상관없이 자격 요건에 맞는 인사를 새로 추천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금운용위는 상설화
복지부는 새로운 기금운용위 멤버가 꾸려지면 이 가운데 3명(근로자, 사용자, 지역가입자 대표 각 1명)을 상근위원으로 위촉해 기금운용위를 상설화하기로 했다. 3명의 상근위원은 기금운용위 산하 3개 소위원회(투자정책, 수탁자책임, 성과평가보상) 위원장이 된다. 3명의 상근위원에겐 차관급에 준하는 연봉(1억2000만원 수준)을 지급할 계획이다.
1년에 여섯 차례 안팎 비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기금운용위 회의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로 정례화하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이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상정 안건을 깊이 심의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등은 ‘반대’
민주노총 등은 정부 방안에 강하게 반대했다. 기금운용위원인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날 “기금운용위는 전문성보다 대표성이 우선해야 한다”며 “대표성을 지닌 인물이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조정, 합의,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회의 시작 전 회의장에서 “복지부 개편안은 가입자 대표성과 민주성을 훼손한다”며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민주노총 소속 임직원이어야 대표성이 있는 것이냐”며 “국민연금이 일부 단체에 휘둘리면서 수익률까지 깎아먹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유창재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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