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혁 기자 ]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으로 엄마를 찾아 중국에서 서울로 온 청년 젠첸(장동윤 분)은 술집에서 일하면서 건달 같은 남자와 사는 엄마를 보고 크게 실망한다. 그러나 엄마가 가방에 넣어둔 공책을 본 뒤 엄마의 기구한 사연을 알게 된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 중국과 서울을 오가며 20여 년에 걸쳐 젠첸 엄마의 비극적인 삶을 조명한다.
지난 4일 밤 막오른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는 14년 만에 조선족 아들과 재회한 한 탈북 여성의 신산한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주인공인 탈북 여성은 돈에 팔려 조선족 남편과 결혼하게 되고 이후 비루한 삶은 계속된다. 두 번의 가정 해체를 통해 아픔과 상처의 나날을 보내지만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꿋꿋하고도 덤덤하게 헤쳐나간다. 관객들은 위태롭고도 잔인한 현실에 맞선 한 여인과 그 가족의 분투에 공감대를 넓혀간다.
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이나영(사진)은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금발에 짙은 화장, 선정적인 옷차림으로 춤을 추는 그는 기존의 우아한 광고모델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탈북 여성으로서 무자비하게 착취당하는 비참한 처지에서도 아들을 먹여 살리려고 애쓰는 엄마의 모습에서는 온갖 풍상을 겪은 나머지 무덤덤해진 감정을 길어올린다.
이나영은 중국어, 옌볜 사투리를 섞어가며 새로운 인물을 창조했다. 그의 연기는 절제되면서도 세련됐다. 스크린을 떠난 사이,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서 세상에 대한 포용력이 한층 깊어진 듯싶다. 배우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관객은 즐겁다.
윤재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가족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아들을 중국에 두고 9년 동안 만나지 못한 조선족 아주머니의 기막힌 사연을 접하면서 다큐멘터리와 함께 장편영화를 기획하게 됐다.
윤 감독이 이나영을 캐스팅한 이유는 뭘까. 그는 “엄마이면서도 젊은 여인, 색다른 느낌을 주는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나영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표정과 분위기로 잘 전달해줬다고 그는 칭찬했다. 이나영은 스스로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또 자신 있는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어서 공백기가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부산=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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